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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세계사격선수권대회와 함께하는 2018 창원 방문의 해

관광/축제

문신 미술관 前관장 최성숙

문신 미술관 前관장 최성숙

작가 文信은 1923년 1월 16일 일본국 사가켄 타케오에서 아버지 文贊伊와 일본인 어머니 천면다기 사이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出生 후 바로 부모님이 異國의 탄광지에서 일을 하는 동안 떨어져 탁아소 생활을 하였고 당시 조국이 처한 암울한 상황과 그에 따른 苦難의 가시밭길은 작가 문신의 풍운아적인 삶과 세기적 조각가로 발돋움하는 토양과 견인차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문신은 그의 나이 5세 때 일본인 어머니와 생이별을 하고 향리 마산에서 할머니 손에서 자라면서 고독하고도 어려운 남다른 고생으로 강인한 인간 정신을 연마하여 불사조의생존 철학과 방법을 스스로 體得하여 나갔다.

한량이며 예술가 기질이 다분했던 아버지 밑에서 일곱 명의 서모를 모시면서도 천진함과 순진 무구한 예술가적 기질을 잃지 아니한 그의 인간 정신과 예술혼은 시대 상황을 넘어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에서 되살아 나는 조타수인 것이다.

문신은 모차르트와 같이 열광적이고도 치열한 예술적인 삶을 살다간 이 시대가 낳은 거의 완벽한 세계적 대 예술가 였다.

어려웠던 일본 고학시절과 6.25동란, 結婚과 離婚 그리고, 渡佛 후 라브넬성의 고성 修飾 작업등으로 시작된 인생 軌跡은 몸으로 여물어 혼으로 빚어 낸 "명상의 신비"라는 문신 예술의 영감의 프로세스로 작용하게 된다. 두 번의 결혼에 실패한 그는 재차 도불하여 세 번째의 여자인 독일인 리아ㆍ그랑빌러를 만나 파리에 定着하게 된다. 그의 어렵고 고독한 이국 생활은 온통 조국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치면서 남도의 푸른 물결이 일렁거리는 고향 마산의 추산동 언덕배기에 돌아갈 환상을 꿈꾸며 생활하여 왔던 것이다.

1978년 주 프랑스 한국대사관에서 당시 괴텡겐 대학 유학생으로 어학 연수중인 한국화가 최성숙을 만나 서럽고 고독했던 20여년간에 걸친 파리생활을 청산하고 귀국을 결심. 1980년 10월 영구 귀국하여 그가 꿈에도 그리던 고향 마산에 정착하게 된다. 그 당시 현대 화랑 전시를 시작으로 수 차례의 화랑 초대전을 개최, 기금을 마련하여 고향 마산에 문신 미술관 건립이라는 대 역사적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14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국내의 화랑초대전과 동서해빙에 따른 동ㆍ서유럽순회전, 프랑스 파리시 초대전 등을 통하여 한국 예술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세계 조각계의 이목이 되어 민간외교의 전령사 역할을 함으로서 국위를 선양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대운은 조각가 문신에게도 크나큰 영광을 안겨주어 25m 높이의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 조각을 올림픽 공원에 세워 세계인의 격찬을 받아 이 시대가 낳은 세계적 조각가 문신의 명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그간의 업적으로 인하여 1992년 프랑스 정부로 부터 예술문학영주장을 수여받고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세종문화상을 수여받았다.

1994년 MBC, 조선일보사 공동주최로 문신 예술 50년 회고전을 개최함으로써 반세기에 걸친 문신예술을 회고하고 그해 5월 그가 꿈에도 그리던 문신미술관을 개관하여 주옥 같은 명품들을 전시함으로써 문신미술관을 민족 예술 문화의 전당으로 자리 잡게 한다.

그러나 문화정책에 대한 잠들라 차마 잠들지 못하는 비통한 심정과 경계를 너머 이상을 그리다가 95년5월 끝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애도를 뒤로한 채 "생명의 소리"들인 저 주옥 같은 명품들을 이 땅의 곳곳에 남겨놓고 영생의 세계로 떠나신 것이다.

살아서 못 다한 예술세계를 부활시켜 민족문화와 더불어 영생할 것을 약속하고 선종하는 그날까지 예술혼을 보임으로써 우리들의 가슴속에 살아있는 예술적 전설로 되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변하여도 예술은 영원하니 예술을 사랑하여 달라"는 遺言을 모두에게 남기도 떠난 문신은 이제 저 하늘의 찬란한 별이 되어 이 땅의 예술문화를 밝힐 것이다.

그는 생전에 그토록 갈망하던 조국과 고향 마산에 문신미술관을 건립하고 저 "신비로운 혼율" 인 유화, 채화, 석고 원형조각 및 조각품들을 민족예술 문화발전을 위하여 조국에 바쳤으니, 이제 우리 모두는 민족의 역사와 더불어 가신님의 예술세계와 정신을 영원히 유지,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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