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문학의 흐름

전쟁기 피난문단과 이후의 마산문학

마산문단은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문단을 형성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그 노력 가운데 하나가 1962년 문협 마산지부의 결성이다.

경인년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여러 문화·예술인들이 마산에서 피난생활을 하였다.
그 무렵 마산은 부산·대구와 더불어 피난문단의 중심지로서 문화예술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1951년 7월 문총마산지부가 결성(지부장:김춘수, 부지부장:김갑덕)되었고, 기관지 『마산문총』(1954)과 동인지 『낙타』(1953)를 냈다. 전쟁기 마산에서는 천상병·오상순·이원섭·김세익·김춘수·김수돈· 정진업·김상옥·김남조·이석·문덕수·이영도·이석·박양 같은 문학인이 활동했다.
한편, 그 무렵 국립마산결핵병원에서 김대규를 비롯한 문학인들이 『청포도』(1952) 동인지를 여러 해까지 냈다. 이석·문덕수·이운경·김봉돈은 동인지 『흑상아』(1954)를 냈다. 그밖에 안장현·최익배·이병주·임종국은 문학활동을 펼쳐 나갔다. 이 밖에도 『처녀지』(1951)를 비롯하여 『봉황』(1954) · 『설산』(1954) · 『시심』(1954) · 『체온첩』(1954) · 『향상』(1954) · 『백치』(1954)와 같은 동인의 활동은 지역문학 활성화의 큰 거멀못이 되었다. 마산문화협의회는 지역문화운동의 총본산으로서 ‘시민의 밤’을 개최하고, 기관지 『문화 마산』을 냈으며, 나라 안에서는 처음으로 두 번씩이나 안윤봉에 의해 『마산문화연감』을 냈다. 그러한 문단 분위기에 힘입어 김태홍·박재호·권도현 같은 문학인이 마산을 터전으로 삼아 문학적 향취를 남겼다.
이미 전쟁기 마산지역의 활발한 문학 풍토를 보며 자랐던 청년 세대들이 1960년대 들어 주역으로써 문학활동을 펼쳐나가기 시작했다. 1960년대는 마산문학사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시기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자년 3·15마산의거는 마산 시민들의 결집과 그 정신을 보여준 주요한 사건이었다. 이때부터 비로소 마산문단은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문단을 형성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이루어졌다.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가 1962년 문협 마산지부의 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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