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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국가산업단지 지정 50주년 기념행사
4. 23.(화) ~ 4. 27.(토) / CECO 및 창원광장
주최 : 산업통상자원부, 경상남도
주관 : 창원특례시, 한국산업단자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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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코스

마산 민주화의 길

마산 민주화의 길(차량 및 도보)

(집결지) 국립3.15민주묘지 - 01. 3·15아트센터 > 02. 3·15의거 기념비 > 03. 3·15의거 발원지(오동동) > 04. 당시 민주당 마산시 당사 > 05. 3·15의거 기념탑 > 06. 무학초등학교 총격 담장 > 07. 마산의료원(당 시 도립마산병원) > 08. 마산합포구청(당시 마산시청) > 09. 김주열열사 시신 인양지 > 10. 부마민주항쟁시원석(경남대학교 내) > 11. 부마민주항쟁 상징조형물

코스 안내

우리지역은 3·15의거,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6월 항쟁이 일어난 전국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민주성지입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리는 민주성지 탐방코스는 3·15의거에서부터 6월 항쟁까지 우리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코스입니다. 도보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번 코스는 차량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럼 출발해 보겠습니다.

[집결지] 국립 3·15민주묘지

국립 3·15민주묘지는 1960. 3. 15. 부정선거에 맞서 고귀한 희생을 하신 3·15의거 유공자 분들이 잠들어있는 성스러운 곳이며, 선열들의 혼이 담겨있는 성역입니다. 3·15의거 희생자들을 모신 곳으로 1998년에 기공하여 2003년에 준공되었습니다. 국립 3·15민주묘지는 민주의 문(탑), 정의의 상, 참배의 공간(참배단, 정의의 벽, 민주의 횃불), 3·15기념관, 유영봉안소, 상징문, 기념시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약 1시간 정도의 시간을 두고 천천히 돌아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3·15아트센터 사진

3·15아트센터 - 마산회원구 삼호로 135

3·15 아트센터는 3·15 의거의 정신을 계승하고 창원 지역의 문화 예술 창달을 위하여 만들어진 공공 문화시설로 2008년 5월 20일 개관하였습니다. 창원 지역 공연 예술의 중심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는 이곳은 3·15의거기념사업회, 마산예총이 사용하는 사무공간과 대극장, 소극장, 전시실 등 전시·공연 공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3·15의거 기념식, 3·15대음악제 등 다양한 3·15의거 관련 행사가 매년 개최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3·15의거 기념비 사진

3·15의거 기념비 - 마산합포구 상남동 104-2

1960년 3월 15일 밤 가장 격렬했던 의거 현장의 하나인 북마산파출소 인근에 거주했던 한학자 신동식 옹이 그날 경찰의 총격으로 윗부분이 파손된 돌에 3·15의거 기념비문과 당시 상황에 대한 기록 및 한시를 새겨 파출소 인근에 1962년에 세운 것으로 이후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약 20m 아래 현 위치로 1999년 6월에 이전했습니다. 3·15의거 당시 북마산파출소 인근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총탄을 발사하였고 의거에 참여했던 시민들이 이 돌 뒤에 몸을 숨겨 목숨을 구했다고 합니다.


3·15의거 발원지(오동동) 사진

3·15의거 발원지(오동동) - 마산합포구 오동동 164-1

발원지는 3·15의거 당시 2층 목조건물이었던 민주당 마산시 당사 건물 앞 입니다.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 당시 선거번호표를 받지 못한 유권자들은 “내 표를 찾아 달라” 고 호소하며 당사 앞으로 몰려왔고 민주당 마산시당은 10시 30분경 전국 최초로 선거포기를 결정, 벽보를 당사 밖에 부착하고 이를 방송으로 알렸습니다. 당사 앞에는 흥분한 군중들이 속속 모여들었고, 민주당원들이 관권 부정선거에 저항해 궐기할 것으로 호소 하자 군중들이 호응해 가두시위를 시작하면서 3·15 마산항쟁이 시작된 곳입니다.
현재 이곳에는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이 세워져 있고, 3·15의거의 발원지임을 알리는 동판 표지판이 설치 되어 있습니다.


당시 민주당 마산시 당사 사진

당시 민주당 마산시 당사 - 마산합포구 마산문화의길 54

당시 민주당 마산시 당사 건물이 있었던 자리에는 현재 3.15의거 발원지 기념관이 세워져 있고, 건물 뒤편에는 3.15의거를 상징하는 당시 사진, 디오라마 등이 설치 되어 있어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뜨거운 함성과 용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3·15의거 기념탑 사진

3·15의거 기념탑 - 마산합포구 서성동 84-331

창동치안센터(당시 남성동파출소)와 마산합포구청(당시 마산시청) 중간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3·15 의거 기념탑은 이승만 정권에 의해 자행된 부정 선거에 항거하여 봉기한 날을 기념하며, 이 날 의거에서 희생된 젊은 학도들의 넋을 위로하고, 3·15 의거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시민의 뜻을 모아 1962년 9월 20일에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습니다. 탑의 높이는 12m, 둘레는 10.8m이며, 기념탑 앞에는 3·15의거의 주역인 학생과 시민을 상징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무학초등학교 총격 담장 사진

무학초등학교 총격 담장 - 마산합포구 자산동 120-5

1960년 3월 15일 의거 당일, 경찰이 시위대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했던 곳입니다. 3월 15일 밤,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들이 시청을 목표로 무학초등학교 앞 도로에 집결해 시청으로 진출을 시도했으며 시위가 격렬해지자 경찰은 시청 앞에서 무학초등학교 방향으로 시위대를 밀어붙이며 시위 군중을 향해 무차별 실탄 사격을 가했습니다. 당시 수많은 총탄자국이 뚜렷이 남은 학교담장이 그대로 있었으나 원래 담장이 헐리고, 2014년 원 위치에서 약간 옆으로 옮겨진 곳에 담장을 복원해 놓았습니다.


마산의료원(당시 도립마산병원) 사진

마산의료원(당시 도립마산병원) - 마산합포구 3·15대로 231

4월 11일. 제2차 마산의거가 시작된 곳입니다. 1960년 4월 11일 오전 11시경,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중앙부두 앞에 떠올랐고, 그의 시신은 마산도립병원(현 마산의료원)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시신 인양 직전 현장에 도착한 부산일보 허종 기자는 바다 위로 떠오른 시신의 모습을 단독으로 촬영하여 타전하게 됩니다. 소문을 듣고 그의 죽음과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김주열의 처참한 죽음에 분노한 학생 및 시민들이 저녁 5~6시경부터 시위를 일으킵니다. 이날 시위 군중은 3월 15일에 비해 규모가 엄청나게 컸으며 시위는 3일간 계속되었습니다. 이후 김주열 열사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시위가 번져나가게 되고, 4·19혁명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곳을 4·19혁명 진원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마산합포구청(당시 마산시청) 사진

마산합포구청(당시 마산시청) - 마산합포구 3·15대로 210

3.15 저녁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대는 개표가 진행되는 당시 마산시청으로 집결합니다. 시위대는 경찰의 저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청으로 나아갔습니다.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 중 정전되자 경찰은 시위대에 총격을 가했으며 이로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습니다. 격분한 시위대는 경찰과 투석전으로 맞섰으며, 새벽까지 경찰에 저항하며 부정선거에 항의하였습니다. 당시 마산시청이었던 이곳은 2010년 7월 1일 통합 창원시 출범에 따라 현재 창원시 마산합포구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김주열열사 시신 인양지  사진

김주열열사 시신 인양지 - 마산합포구 신포동 1가 47-6 외

1960년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에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의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떠올랐습니다. 이승만 독재정권의 이와 같은 만행에 마산 시민들의 분노는 민중봉기로 폭발하였고 4.11마산 민주항쟁의 불길이 전국으로 번져 마침내 4·19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곳을 ‘4월 혁명발원지’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2011년 9월 22일 경상남도기념물 제 277호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민주화운동 관련장소가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이곳이 처음입니다. 이곳에는 시신인양지 표지판, 김주열 열사 추모의 벽, 4·19혁명 발원지 동판, 도지정문화재 안내 표지판 등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한편, 매년 4월 11일 김주열 열사 추모식이 이곳에서 개최됩니다.


부마민주항쟁시원석(경남대학교 내) 사진

부마민주항쟁시원석(경남대학교 내) - 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

경남대학교는 1979.10.18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의 발원지입니다. 1979년 10월 16일~17일 부산에서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는 항쟁이 시작되자, 경남대학 학생들도 10월 18일 당시 도서관으로 쓰였던 건물 앞에 있는 큰 히말라야시다(개잎갈나무) 아래 쉼터에 모여 시국을 규탄하면서 반유신독재 시위를 시작하였습니다. 2009년 10월 18일 부마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하여 경남대 동문공동체에서 경남대학교 내 월영지(연못) 부근에 부마민주항쟁 시원석을 세웠습니다.


부마민주항쟁 조형물 사진

부마민주항쟁 조형물 - 마산합포구 해운동 54

마산에서 발생한 부마민주항쟁(1979년 10월 18일)을 기념한 상징 조형물로 부마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9년 12월 부마항쟁정신계승위원회에서 세웠습니다. 마산합포구 서항공원 내에 설치되어 있으며, 조형물은 『나도 잘못이 있고, 너도 잘못이 있으니 서로 상처를 안아줘야 한다』 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산 민주화의 길을 따라 걸으면 그토록 열망했던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지난 날 얼마나 치열하게 노력하였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지역의 민주주의에 관한 역사 현장을 탐방하면서 그 의미를 되돌아보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산 민주화의 길 코스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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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원콜센터 ( 1899-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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