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해설]
2019넌 11월 12일 시민문예대학 강연 주제는 <마산의 도시화와 근대건축>으로 신삼호 건축사님의 강연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마산 지역의 역사와 건축물에 대한 강연 중에 행정구역의 변천과 우리 지역 근대건축에 대한 내용들을 소개합니다.
근대기 창원의 행정구역 변천과정
1) 갑오개혁 : 지방행정에 관한 건(1895. 5. 26. 칙령 제98호)
- 전국을 23개소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각부를 설치함
- 진주부 : 진주군, 고성군, 진해군, 사천군, 곤양군, 단성군, 산청군, 하동군, 거창군, 안의군, 함양군, 합천군, 초계군, 삼가군, 의령군, 칠원군, 함안군, 창원군, 웅천군, 김해군 (21군)
2) 지방관제 개정 (23부제 폐지) (1896. 8. 4. 칙령 제35호)
- 전국 23부를 13도로 개정하고 각도에 관찰사를 설치한다.
- 경상남도 (30개 府郡) : 동래부 진주군(1등), 김해군 밀양군(2등), 창원군(3등),
칠원군, 웅천군, 진해군(4등)
3) 지방관제 개정 (1899. 5. 6. 칙령 제16호)
- 경상남도 1등 동래부와 창원군을 창원부로 변경, 함경북도 1등 경흥부에 성진부 추가
4) 지방구역 정리 건(1906. 9. 24. 칙령 제49호)
- 진해군 : 진주 양전면을 진해군에 포함 (동면, 북면, 서면, 양전면)
- 칠원군 구산면 : 창원에 편입 (4면)
- 창원부 : 부내면, 북면, 동면, 서면, 상남면, 하남면, 대산면, 구산면 (8면)
- 웅천군 : 읍내면, 부중면, 하서면, 상서면, 내동면, 외동면, 천성면, 가덕면(8면)
5) 경상남도 면정리에 관한 건(1909. 10. 25. 내무령 제9호)
- 창원부 18면으로 통폐합
- 기존(10):부내면, 동면, 북면, 대산면, 상남면, 하남면, 내서면, 외서면, 구산면, 양전면
- 통폐합(8) : 동면+외동면(구 웅천)= 웅동면, 상서면+하서면(구 웅천)= 웅서면, 천가면+가덕면(구 웅천)= 천가면, 읍내면(구 웅천) = 웅읍면, 중면(구 웅천) = 웅중면, 동면(구 진해)= 진동면, 서면(구 진해) = 진서면, 북면(구 진해) = 진북면
다. 일제 강점기 창원의 행정구역 변천과정
1) 부·군 명칭 및 관할구역(1910. 10. 1. 공포, 부령 제7호)
- 마산부 : 종래의 창원 일원
2) 부·군 명칭 및 관할구역(1913. 12. 29. 공포, 부령 제111호) : 마산부와 창원군 분리
- 마산부 : 마산부 각국거류지 일원, 외서면의 완월, 신월, 월영, 자산, 서성, 성호, 중성, 성산, 동성, 오산, 상남, 교방리의 일부
- 창원군 (18면) : 마산부내면, 상남, 하남, 동면, 북면, 내서, 구산, 대산, 진동, 진북, 진서, 양전면, 웅읍면, 웅동면, 천가면, 진해면, 웅서면, 외서면 내 마산부 외의 지역
3) 읍·면 구획에 관한 규정(1930. 12. 29. 공포, 부령 제103호)
- 진해읍 : 경상남도 창원군 진해면 일원
강연에서는 마산우편국과 마산역의 역사에 대해서도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 마산우편국(1902) :
▪ 한국 통신 우편의 역사
- 우리나라 최초의 전신선은 1884년 1월 부산포에 일본전신국이 설치되어 일본 나가사키와의 해전전신이 개통 이후, 전기통신이 실용화된 것은1885년 10월부터 인천을 기점으로 한성, 의주에 이르는 경인. 경의선인 서로전선이 청나라에 의해 가설되었다.
- 러일전쟁의 개시 전 창원과 부산의 전보사를 점령과 함께 한국의 전신망을 무력으로 장악하였다. (1904. 2. 13) 이후 한일통신협정을 맺어 통신권을 빼앗기게 된다. <그림16. 마산우편국. 1902>
▪ 마산의 우편국의 역사
- 개항(1899. 11. 16)과 함께 부산우편국 마산출장소를 설치하여 우편사무를 개시하였다. 1900년 마산출장소를 폐지하고 마산우편국을 설치하였다. 영사 사카다를 국장으로 하고 1902년 8월 1일 42평의 우편국이 본정 4정목에 완공되었다.
- 일본영사관 아래 1902년 9월 완성되기 전에는 임대해서 국무를 행하고 우편 외에 환전, 소포, 저금 등의 사무를 취급하며, 국장은 사까다(판전)영사가 겸임하였다.
- 1904년 통신사무를 개시하였으며, 5월 22일 일본에게 우편사무를 위탁함으로 우편체사 및 전보사를 계승하였다.
- 1906년 6월 1일부터 전화교환사무를 개시하였다. 초창기 국장은 영사가 겸임하였으며, 1903년 3월 1일 통신서기 하합영길이 국장으로 취임, 1906. 1. 1 동조원태랑이 부임하였으며 직원수는 42명으로 내전화 교환수가 14명이며, 서기 천풍, 기수 임강보, 서기보 4인이 있다. (마산과 진해만, 1911)
- 전화의 일반시민에게 개방된 것은 1909년 마산우편국에서 개통되었다.
** 마산역 역사(1905)
-마산철도는 경부선 삼랑진에서 약 25마일 선로이다. 1905년 2월에 기공하여 동년 6월에 운전을 개시하였다. 육군 임시철도반이 건설하였다. 1906년 통감부 소속으로 이관되었다. (마산과 진해만. 1911)
- 국철 마산선 : 일러 교전중 1904년 8월 육군 군사전용으로 철도감독부 마산반을 급히 설립하여 1905년 6월 6일 개통축하식을 거행하였다. 당초 경부선 분기점인 삼랑진과 마산 사이에 진영, 창원 2개의 역만 있었다. 당시 전쟁 막바지라서 군사목적으로는 1회만 운송하였으여, 11월 1일에 일반민중을 위해 개방되었다. (마산항지. 1926) <그림17. 마산역 정거장. 1905>
- 마산역 : 마산의 현관문으로 1905년 11월 1일, 그 해 6월 6일 일러대전이 황국군이 대승하여 마산에도 성대하게 축화회가 개통되었다. 같은 날 마산선의 개통식을 거행하였다. 1925년 6월 25일 마산-진주간의 경남선이 개통되었다. 당 역에서 발송되는 하물은 마산만 및 부근의 연안에서 포획된 어류는 매일 역두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성황을 이루어 마산역은 하물로 인해 수입 제1위를 차지하고 있다. (마산현세록. 1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