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해설]
건축가이자 저술가로 활동하고 계시는 허정도(한국토지주택공사 상임감사위원) 선생님은 <도시의 얼굴>이라는 책에서 우리 지역의 향토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흥미롭게 기술하고 있다.
이번 강연에는 마산에서 문학활동을 했던 작가 <임화와 지하련>에 대한 주제로 강연을 했다. 임화와 지하련은 마산문학관이 위치한 노비산 맞은편 용마산 인근에 보금자리를 두고 한동안 생활을 했었다. 강연록에는 임화와 지하련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1935년 7월 하순, 한여름 더위를 뚫고 임화가 마산에 왔다. 만주사변 후였고 중일전쟁 직전이었다. 대륙침략을 눈앞에 둔 때여서 일제의 폭압정치가 노골화되고 있었다. 스멀스멀 새어나오는 전쟁의 기운이 살갗에 느껴질 때였다. 마산앞바다에는 군수품 수송을 위한 제2부두가 들어섰고 중앙부두 공사도 막 시작되었다. 술·간장·된장·쌀·옷 등 마산의 특산들을 전장으로 실어 나를 참이었다.
그해 9월 11일 매일신보 「학예왕래」 편에 「임화 씨 마산부 新町(신정) 73-3 轉居(전거)」라는 기사가 실렸다. 신정은 지금의 마산합포구 추산동. 카프 서기장이자 당대 최고의 좌파문학가 임화가 마산 추산동에 거처를 잡았다는 소식이었다. 임화(1908~1953, 본명 임인식)가 마산에 온 목적은 결핵치료였지만 숨은 이유는 지하련(1912~1960, 소설가, 본명 이현욱) 때문이었다. 1912년 거창 위천면에서 후실의 딸로 태어난 지하련은 열여섯이 되던 해(1927) 큰오빠가 있는 마산으로 왔다. 동경소화고등여학교와 동경여자경제전문학교를 나온 엘리트 신여성이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1930년 경 동경에서였다. 임화는 프로문예운동 일로 갔고 지하련은 유학생이었다. 연정은 지하련이 먼저 품었다. 임화가 평양실비병원에 입원했을 때(1934) 그녀는 천리 길을 뚫고 병원으로 찾아갔다. 이 일이 결정적 계기였다. 눈보라가 치던 평양의 어느 겨울 밤, 예고 없이 지하련이 임화의 병실에 나타났다. 이 만남이 임화가 마산을 요양지로 택한 이유였다. 흰 피부와 수려한 외모로 ‘조선의 루돌프 발렌티노(1895~1926, 당시 할리우드 최고의 미남배우)’라는 별칭을 가졌던 모던보이. 29년에는 영화 「유랑」과 「혼가」에 주연으로 출연했던 다재다능한 인물. 그의 마산살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2년 7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임화는 이 도시에서 병든 몸을 다스리며 굴곡의 시대를 글로 남겼다. 해가 바뀐 36년 7월 8일, 가족 반대를 무릅쓰고 두 사람은 결혼했다. 마산 어느 산사(山寺)에서 친지 몇 사람과 하루를 즐기면서 올린 결혼식이었다. 임화는 재혼이었다. "
* 이번 강연에는 매우 특별한 방문객도 있었다. 바로 육호광장인근에서 <백석이 지나간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여사장님의 방문이었다.
백석 책방("백석이 지나간 작은 책방"을 줄여서)은 마산문학관 인근에서 거주하는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그 책방을 만들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허정도 선생님의 책 <도시의 얼굴>에 등장한 백석 시인에 대한 내용 때문이었다. 백석 시인은 전국을 여행하며 많은 기행시를 남겼는데, 남도 지방을 여행하면서 마산을 방문한 내용이 <도시의 얼굴>에 담겨 있다. 이 책을 읽은 부부는 교통의 요지인 육호광장을 지척에 둔 곳에 2018년 책방을 열게 되었다.
강연에 앞서서 허정도 선생님과 책방 여사장님은 잠시 뜻깊은 만남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