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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시민문예대학 개강 특강 (3.23.토)/이우걸 시인

등록일 :
2019-04-26 06:12:38
작성자 :
문화유산육성과(055-225-7193)
조회수 :
182

마산문학관 시민문예대학 이우걸 시인 특강

마산문학관 시민문예대학 이우걸 시인 특강

[사진 해설]

시민문예대학 개강 특강은 "나의 시조 나의 시론"라는 주제로 원로 시조시인 이우걸 선생님이  맡아주셨습니다.
오랫동안 우리 한국 시조단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해 오신 이우걸 선생님의 인생과 문학이 같이 녹아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중농의 가정에서 8남매 중 7번째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난 1946년은 해방 이듬해이고 청록집이 발간된 해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한학을 하셨고 어머니는 시나 가사 외우기를 좋아하고 생활화하시는 분이었다. 어릴 때 외울거리를 만들어 달라고 하셔서 형님들 국어책에서 고시조나 정철의 사미인곡, 속미인곡을 비료포대 종이나 신문지에 붓글씨로 써 드리곤 했다. 그런 가정 분위기 때문에 나는 자연스레 책읽기를 좋아했고 가끔 혼자서 시를 써서 외워보곤 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나의 모습을 보시고 언제나 말이 없으셨다. 그러나 고등학교 다닐 때쯤엔 오히려 화를 내셨다. 글 쓰는 일은 집안을 망치는 일이라고 타이르시곤 하셨다. 
 중학교 때는 헌 책 장사가 가져온 책을 운동장에서 펼쳐놓고 팔곤 했다. 대부분 문학책이었다. 모윤숙의 『렌의 애가』, 한하운의 『보리피리』, 신석정의 『어머니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등과 청록파 시인들의 시집, 김춘수의 『세계 현대시 감상』, 김소월, 장만영, 김용호 시인들의 시집을 사서 많이 읽었다. 내 문학은 그런 독서를 통해 조금씩 깊어갔지만 어디까지나 취미로 생각했다. 경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입학한 것도 문학을 취미로 생각하는 나의 다짐을 현실화시킨 결정이었다." 

이우걸 시인은 글쓰기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성장기의 이야기를 이렇게 풀어내 주셨다.
대학의 전공학과가 문학계열이 아니었음에도 문학에 대한 열정은 지속되었고 결국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사회교육과 역사전공인 나는 학과 공부에 큰 흥미를 갖지 못해서 늘 창작에만 심혈을 기울였다. 1년에 두 번씩 학보에 발표되는 내 작품은 김춘수 교수의 때로는 자상하고 때로는 가혹한 비평에 의해 단련되어 갔다. 김춘수, 김종길, 조지훈, 조병화 선생의 시론집을 구해 읽고 영남대 박철희 교수께 평론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결국 1973년 《현대시학》 2월호에 ⌜이슬⌟, ⌜지환⌟이란 작품으로 첫 추천을 받았다. 이영도 선생의 선이었다. 작품 제목이 환기하는 바와 같이 아름다운 것, 전통적인 것에 대한 그림 그리기가 내 습작과정의 전부였다.  그러나 릴케에 경도되어있던 김춘수 선생은 스스로의 작품과 비평으로 언어에 대한 각성과 내면 의식의 중요성을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그냥 사물 그리기는 물론 아니었다. 우리나라 시는 모더니즘시, 리얼리즘시, 전통서정시가 있다고 봤을 때 나는 전통서정시 이상으로 모더니즘 계열의 시에 더 흥미를 가지고 작품화하려고 노력했지만 이영도 선생은 2회째는 ⌜편지⌟, ⌜설야⌟, 3회째는 ⌜도리원 주변⌟등 서정적인 작품을 추천해주셨다."

시인은  1977년 첫 번째 시집 『누군가 와서』를 내었지만 그 시기의 대표작으로 1981년 두 번째 시집 『빈 배에 앉아』에 실려 있는 <비>를 소개해 주고 있다..

  나는 그대 이름을 새라고 적지 않는다
   나는 그대 이름을 별이라고 적지 않는다
   깊숙이 닿는 여운을 
   마침표로 지워버리며

   새는 날아서 하늘에 닿을 수 있고
   무성한 별들은 어둠 속에 빛날테지만
   실로폰 소리를 내는 
   가을날의 기인 편지.  

    ⌜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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