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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

민주화 유적지

민주화 유적지

3·15의거 발원지
  • 3·15의거 이미지01

    3·15의거 발원지 표지판(동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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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5의거 상징 부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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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곳은 3·15의거 당시 2층 목조건물이었던 민주당 마산시 당사 건물 (동판에서 오른쪽에 있는 건물) 앞이다.1960년 3월 15일 민주당 마산시당사에서 민주당원들이 선거포기를 선언하고 밖으로 나와 시위를 시작하면서 3·15 마산항쟁이 시작되었다.

  • 위치마산합포구 오동동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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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 기념탑
  •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자유당 정권이 장기집권의 야욕을 품고 3·15 부정 선거를 단행하자 이날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나와 경찰의 물대포, 최루탄, 실탄에 맞서 돌을 던지며 싸웠다. 3·15의거기념탑은 이 날의 의거를 기념해 세운 것으로 탑의 높이는 12m, 둘레는 10.8m이며, 형태는 삼각석탑이다. 기념탑 앞에는 3·15의거의 주역인 학생과 시민을 상징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 위치마산합포구 서성동 84-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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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초등학교 총격 담장
  • 1960년 3월 15일 의거 당일, 경찰이 시위대에게 무차별 사격을 가했던 곳 이다. 3월 15일 밤, 시내 곳곳에서 시위대들이 시청을 목표로 무학초등학교 앞 도로에 집결해 시청으로 진출을 시도했다. 시위가 격렬해지자 경찰은 시 청 앞에서 무학초등학교 방향으로 시위대를 밀어붙이며 시위 군중을 향해 무차별 실탄 사격을 가했다. 당시 수많은 총탄자국이 뚜렷이 남은 학교담장 이 그대로 있었으나 원래 담장이 헐리고, 2014년 원 위치에서 약간 옆으로 옮겨진 곳에 담장을 복원해 놓았다.

  • 위치마산합포구 자산동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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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혁명 진원지
  • 4·19혁명 진원지 이미지01

    당시 마산도립병원 정문 앞

  • 4·19혁명 진원지 이미지02

    4·19혁명 진원지 표지석(현 마산의료원)

  • 4·19혁명 진원지 이미지03

  • 4·11 제2차 마산의거가 시작된 곳이다. 1960년 4월 11일 오전 11경,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중앙부두 앞에 떠올랐고, 그의 시신은 마산도립병원(현 마산의료원)으로 옮겨졌다. 소문을 듣고 그의 죽음과 시신을 확인하기 위해 시민들이 몰려들었고, 김주열의 죽음에 분노한 학생 및 시민들이 저녁 5~6시 경부터 시위를 일으켰다. 시위는 3일간 계속되었고, 이후 김주열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시위가 일어났다. 4·19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 위치마산합포구 3·15대로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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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
  • 1960년 4월 11일 동판 바로 앞 3m 전방에서 오른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떠올랐다. 이와 같은 만행에 마산 시민들의 분노는 민중봉기로 폭발했다. 4.11마산 민주항쟁의 불길이 전국으로 번져 마침내 4·19혁명이 일어났다. 그래서 이곳을 ‘4월 혁명발원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2011년 9월 22일 경상남도기념물 제 277호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민주화운동 관련 장소가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이곳이 처음이다.

  • 위치마산합포구 신포동1가 47-6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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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5의거 기념비
  • 1960년 3월 15일 밤 가장 격렬했던 의거 현장의 하나인 북마산파출소 인근에 거주했던 한학자 신동식 옹이 그날 경찰의 총격으로 윗부분이 파손된 돌에 3·15의거 기념비문과 당시 상황에 대한 기록 및 한시를 새겨 파출소 인근에 세웠다. 이후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약 20m아래 현 위치로 이전했다.

  • 위치마산합포구 상남동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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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3·15민주묘지
  • 국립 3·15민주묘지는 1960.3.15. 부정선거에 맞서 고귀한 희생을 하신 3·15 의거 유공자 분들이 잠들어 있는 성스러운 곳이며, 선열들의 혼이 담겨있는 성역이다. 3·15의거 희생자들을 모신 곳으로 1998년에 기공하여 2003년에 준공되었다. 국립 3·15민주묘지는 민주의 문(탑), 정의의 상, 참배의 공간(참 배단, 정의의 벽, 민주의 횃불), 3·15기념관, 유영봉안소, 상징문, 기념시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3·15기념관
3·15기념관
  • 3·15의거의 발생배경과 전개과정 및 3·15의거가 주는 교훈을 유품과 기록물 영상자료 등을 통하여 보여줌으로써 민주화의 산교육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유영봉안소
유영봉안소
  • 3·15의거 정신을 함양하고 승화 계승시키는 공간으로, 3·15 의거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명절과 3월 14일에는 유족과 기관 단체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정의의 벽
정의의 벽
  • 이 땅에 정의를 세운 그날의 애국·희생정신과 저항·투쟁의 현장을 부각시킨 역사의 장으로 민주의 횃불과 함께 3·15정신을 계승, 승화시키는 영원성의 공간이다.
정의의 상
정의의 상
  • 3·15의거 그날의 주역들을 상징하는 3인의 역동적인 운동감과 표정속에 그들의 정의로운 정신성과 의지 그리고 단결된 행동력을 함축적으로 표출함으로써 3·15 정신의 본질을 상징하였고, 내용적으로는 이상과 현실의 통합인 동시에 상징적으로 구속 및 탈출과 해방이며, 자유와 민주를 향한 도전의 힘을 상징함. 자유와 평화를 기리는 애국ㆍ애족ㆍ호국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민주의 문
민주의 문
  • 열려진 두 개의 문은 부정선거에 저항하여 이 땅에 정의를 세우고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였던 그 날의 뜨거운 정신인 정의와 민주를 나타내며, 한국의 역사에 있어 민중에 의하여 주체적으로 민주주의의 첫 문을 연 고귀한 정신의 표상이며, 탑 뒷면에 거울처럼 빛나는 스테인레스 금속은 태양 빛을 받아 주변을 투명하게 반사하는 시각적인 현대미를 제공하는 이중적인 효과를 갖는 동시에 3·15의거 정신의 후광을 받아 날로 발전하는 민족의 밝은 미래를 상징한다.
민주의 횃불
민주의 횃불
  • 여러겹으로 점철된 책 모양의 사각 이방체로서 힘차게 돌출된 횃불을 든 세 개의 손은 마산지역 정신사에 면면히 이어온 대민족운동의 역사적 배경을 상징하는 동시에 주부조벽에 부각된 3·15의거 정신을 함축한 단면이기도하며 부정에 항거하여 일어 선 민주정신의 표상으로서 민족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로서 영원성을 갖는다.
기념시비
기념시비
  • 책 6권을 세워서 펼쳐놓은 모양으로, 시 12편을 수록할 수 있으며, 현재 김춘수의 ‘베고니아 꽃잎처림이나-마산사건에 희생된 소년들의 영전에’ 등 10편의 선정시 수록, 추후 2편을 추가 선정하여 수록 예정이다.
  • 위치마산회원구 3·15성역로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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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상징조형물
  • 마산에서 발생한 부마민주항쟁(1979년 10월 18일)을 기념한 상징 조형물로 부마민주항쟁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99년 12월 부마항쟁정신계승위원회에서 세웠다.
    · 조형물의 의미 - 위쪽의 붉은 무늬 : 혼돈을 의미 - 손 : 한손은 나, 다른 한손은 당신(너)을 의미
    ▶‘나도 잘못이 있고, 너도 잘못이 있으니 서로 상처를 안아줘야 한다’는 의미

  • 위치마산합포구 해운동 54 (서항공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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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마민주항쟁 시원석
  • 경남대학교는 1979.10.18 마산에서 일어난 부마민주항쟁의 발원지다. 1979 년 10월 16일~17일 부산에서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하는 항쟁이 시작되자, 경남대학 학생들도 10월 18일 당시 도서관으로 쓰였던 건물 앞에 있는 큰 히말라야시다(개잎갈나무) 아래 쉼터에 모여 시국을 규탄하면서 반유신독재 시위를 시작하였다. 2009년 10월 18일 부마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하여 경남대 동문공동체에서 경남대학교 내 월영지(연못) 부근에 부마민주항쟁 시원석을 세웠다.

  • 위치마산합포구 경남대학로 7 (경남대학교 내 월영지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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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융기 열사 추도비
  • 3·15의거 시위 도중 희생된 강융기를 기린 추도비로 교정 안쪽에 있다.* 강융기 열사는 마산공고 2학년 재학 중 1960년 3월15일 밤 남성동파출소 앞 시위에서 복부에 관통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 중 숨졌습니다.

  • 위치마산회원구 학교단지로 53(마산공업고등학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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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열사 추도비
  • 3·15의거 시위 도중 희생된 김영호를 기린 추도비로 교문 가까이에 있다.* 김영호 열사는 마산무학초등학교, 마산중앙중을 거쳐 마산공고 야간부 2학년에 재학중이던 3.15의거 당시 마산시청 인근에서 후두부 관통 총상을 입고 숨졌습니다.

  • 위치마산회원구 학교단지로 53-1(마산중앙중학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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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열 열사 흉상
  • 2000년 3월 15일 입학 동기인 마산상고 37회 졸업생들이 뜻을 모아 마산상고 내에 흉상을 세웠으나, 2005년 학교담 개방 공사를 하면서 담장 밖으로 옮겨졌고, 2008년 4월 11일 김주열 열사 기념사업회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새롭게 조성하였다.
    * 김주열 열사는 전북 남원 출생으로 남원금지중을 거쳐 마산상고에 합격하였습니다. 1960년 3월 15일 밤 마산시청 앞에서 시위하다 실종된지 27일만인 4월 11일 마산중앙부두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눈에 박힌 변사체로 발견되 었습니다.

  • 위치마산합포구 허당로 51(용마고등학교 담장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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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실·김영준 열사 추념비
  • 3·15의거 시위 도중 희생된 김용실, 김영준 군을 기린 추념비로 마산고등학교 문 바로 옆에 있다.
    * 김용실 열사는 마산중앙중을 거쳐 마산고 1학년 이었던 3.15의거 당시 북 마산파출소 앞에서 두부 관통총상을 입고 숨졌습니다.
    * 김영준 열사는 1960년 3월 마산고를 졸업하였으며, 3.15의거 당시 마산시청 인근에서 총상을 입고 도립마산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숨졌습니다.

  • 위치마산합포구 심온길 33(마산고등학교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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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민주항쟁 30주년 기념표석
  • 독재정권에 맞서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어낸 6월 민주항쟁 30주년을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고자 2017년 6월 10일 610명의 시민후원으로 마산합포구 창동사거리에 설치하였다.

  • 위치마산합포구 창동 257-1(창동사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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