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자료

꺼지지않는불꽃 3.15

등록일
2019-07-03 05:3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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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자막)꺼지지 않는 불꽃 3·15</b>

예로부터 마산은 불의에 항거한 민주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도시다.
조선 후기 지배층에 수탈과 착복, 강탈등에 비행에 대항한 농민 봉기에 선두에 있었으며, 일제식민 통치 아래 3·3만세 사건, 삼진의거 등 끊임없는 민족적 투쟁을 전개해 왔다.
이처럼 시대적 흐름과 기회를 같이 하며 올곧음으로 섬긴 그는 마산에 항거정신은 오천년 한국사에 결코 지울수 없는 역사적 사건 3·15의거라는 대민족 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민족의 허리가 잘리는 분단의 아픔을 겪는다
분단이란 비극은 결국 동족상잔의 피를 불렀고 이땅에 이승만의 정치적 기반을다지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12년 장기독재의 길을 열어주는 결과를 낳게 한다
1954년 사사오입 개헌에서부터 조봉암 사형, 1958년 보안법 파동 등 이승만 정권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비민주적이고 야만적인 정책을 일삼는다.
부정부패로 얼룩진 자유당의 정치 행태,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뜻밖의 결과를 맞게 된다
부통령에 야당 후보인 장면이 당선된 것이다. 이 사건은 자유당에 위기의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된다.
차기선거에서 반드시 권력승계자인 부통령을 선출해야 했던 이승만 정권은 이를 위해 언론은 물론 국민에 대한 탄압을 4대 정부통령 선거를 한달여 앞둔 1960년 2월 15일 이기붕을 부통령에 당선시키고자 모든 관권, 군권, 심지어는 정치깡패까지 동원해 불법 선거를 자행할 온갖 음모를 준비한다
드디어 1960년 3월 15일 당시에 인구 15만 정도인 남녘의 항구도시인 마산은 술렁임 속에서 아침을 맞는다.
선거는 4할 사전 투표, 3인조 9인조 공개투표 등 자유당이 짜놓은 각본대로 진행된다.
갖은 불법과 노골적인 부정행위가 목격되자 국민의 인내력은 한계점에 이르렀다.
더 이상의 공명선거를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 사태에 민심은 폭발하고 만다.
시민들은 선거를 포기하고 민주당 마산시당부에 모이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모여든 시민들과 학생들이 어느덧 1,500명 도둑맞은 선거권을 외치며
불법선거에 대한 항거의 불이 붙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경찰은 시위대를 저지하려고 하지만 배신감과 울분으로 격해진 시민들을 잠재우기엔 역부족
시위대 행렬은 남성동파출소쪽으로 이동, 재선거와 정당한 투표권의 행사,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를 외치기 시작했다.
대기를 타고 하늘높이 메아리 쳤다는 시민의 함성은 더욱 커져만 가고
경찰은 곤봉 등으로 무력진압에 나서며 소방차를 동원 물세례를 퍼붓는다
반공 청년단까지 합세한 무력진압에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는 더욱 격렬해진다.
한편, 부정선거 개표가 진행되고 있는 마산시청을 중심으로 이를 저지하기 위한
수천명의 군중이 몰려들자 무장경찰은 소방차와 체류탄으로 맞섰다.
그러나 질풍노도처럼 밀려오는 민주화 함성에는 불가항력
어깨와 어깨를 마주하며 빼앗긴 민권을 지키기 위해 항진하는 시위대 행렬은 계속되고 
그 순간 총성과 함께 시위대 선두에 서 있던 학생이 쓰러졌다.
거의 같은 시각, 남성동파출소에서도 북마산파출소앞에서도 시위진압이란 명분아래 시민들을 향한 총격이 가해졌다.
피를 나눈 형제, 뜻을 함께한 동료의 심장을 향해 가해지는 무차별 총격
민주화를 외치던 많은 시민들이 하나둘씩 무참히 쓰러져 갔다
그러나 시위대는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꼭 찾아야 할 민권과 다시 회복해야 할 민주주의가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많은 희생을 치러야만 했던 참혹한 3월 15일
이로 인해 마산은 자유당 정권 붕괴의 태풍의 눈이 돼 이땅에 정치적 관심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민권을 찾기 위해 맨주먹으로 일어섰던 시민들
하지만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려던 자유당 정권은 급기야 그들을 용의범으로 몰아 체포와 구금, 갖은 고문을 감행한다.
붉은 산으로 물던 3월이 가고 불투명한 내일의 두려움과 함께 시민들의 가슴 가득 울분이 쌓여갈 때 마산 중앙부두에 떠오른 한 어린 소년의 시신
3월15일 항쟁시 행방불명됐던 김주열 학생이 싸늘한 주검이 돼 돌아온 것이다.
얼굴에 최류탄이 박힌 채 처참한 모습
이는 이승만 정권의 비도덕성과 야만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으로
그동안 억압받고 짓밝혀온 민중들에게 민주화의 열망울 분출하는 도화선이 돼
2차 마산의거를 일으키고 드디어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김주열의 죽음으로 불붙은 민주화 시위는 전국에 걸쳐 요원의 불길처럼 타올라 
4월 19일 서울에서 그 불꽃이 절정에 달한다.
서울지역의 대학생들이 드디어 자유당 독재정권에 맞서 맨주먹으로 거리로 뛰쳐 나온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온 국민이 합세한 이 의거로 마침내 독재와 폭정으로 점철된 이승만 독재정권은 그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속에 묻히고 만다.
자유·민주·정의를 향한 3월 15일의 뜨거운 함성
순수한 열정의 젊은이들이 독재의 총구앞에 쓰러져 갔고
그들의 피는 이땅 민주주의의 힘찬 발걸음으로 이어진다.
고귀한 마산의 정신, 마산의 피가 그 씨앗을 품는다
현대의 민주화의 역사에 있어 최초의 민권 승리를 잉태한 희망 
3월 15일은 그렇게 기억되야 한다.
그리고 그 정신은 영원히 계승되어야 한다.

<b>(자막)그날 밤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고 뛰쳐나온 젊은 사자들의 용맹이여
청춘보다 소중하다던 조국의 운명을 구하기 위해
부르던 애국가도 끝나기 전에 원수의 총탄에 쓰러진 젊음이여
보아라! 저 3월의 하늘 아래 피맺힌 우리들의 외침이
뜨겁게 치솟는 푸르른 자유의 물결  
거룩한 민주의 꽃으로 피어난 것을....</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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