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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문학답사 (무흘구곡)

등록일 :
2019-05-30 11:22:01
작성자 :
문화유산육성과(055-225-7193)
조회수 :
236

마산문학관 시민문예대학 문학현장답사 무흘구곡

마산문학관 시민문예대학 문학현장답사 무흘구곡

[2019년 상반기 시민문예대학 문학현장 답사]

1. 일시 : 2019. 5. 11(토)
2. 장소 : 무흘구곡(경북 성주)

2019년 상반기 문학현장 답사는 경북 성주시와 김천시에 걸쳐 있는 무흘구곡으로 다녀왔습니다. 해설은 우무석 시인이 맡아 주셨습니다.
무흘구곡은  寒岡(한강) 鄭逑(정구) 선생이 중국 송나라 朱熹(주희)의  사상을 유난히 흠모하여, 주희의 ‘武夷九曲(무이구곡)’을  본떠 자신만의 구곡을 설정하고 ‘武屹九曲(무흘구곡)’을 지은 것에서 유래합니다. 성주에서 김천까지 걸쳐 있는 9곳의 절경을 읊은 7언 절구의 漢詩(한시)인데, 이번 답사에서는 성주에 있는 1곡에서 4곡까지 다녀왔습니다.

무흘구곡의 지은이는 정구 鄭逑 [1543(중종 38) ~ 1620(광해군 12) ] 선생입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 성주(星州) 출신. 김굉필(金宏弼)의 외증손으로, 판서 사중(思中)의 아들이다. 성주이씨(星州李氏)와 혼인한 인연으로 성주에 정착하였다.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재주가 뛰어나 신동이라 일컬었다. 7세 때 《논어》와 《대학》을 배워 대의를 통하였으며, 12세 때 그의 종이모부이며 조식(曺植)의 고제자였던 오건(吳建)이 성주향교의 교수로 부임하자 그 문하생이 되어 《주역》 등을 배웠다. 겨우 건(建)·곤(坤) 두 괘만 배우고 나머지는 유취하여 8괘와 64괘의 뜻을 쉽게 통하였다 하니 그의 재주가 얼마나 비상하였던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563년(명종 18)에 이황(李滉)·조식에게서 성리학을 배웠다. 그 이듬해 상경하여 과장(科場)까지 갔다가 시험에 응하지 않고 귀향하였고, 그뒤로는 과거를 단념하고 구도의 일념으로 학문에만 열중하였다. 1573년(선조 6)에 김우옹(金宇顒)의 추천으로 예빈시참봉(禮賓時參奉)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그 뒤에도 계속하여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그때마다 사임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따라서 그는 학문하는 자세와 인격수양의 방법은 이황을 닮았고, 천성이 호방하고 원대한 기상은 조식의 모습 그대로였다. 1580년 창녕현감을 시초로 하여 그 이듬해에 사헌부지평, 1582년에 군자감판관에 제수되었으나 신병을 이유로 사임하고, 1584년 동복현감에 이어, 1585년에 교정청의 교정랑이 되어 《경서훈해 經書訓解》를 교정하였다. 1591년 통천군수에 부임하고, 그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격문을 각군에 보내어 의병을 일으키도록 선도하였다. 1594년에 우승지·강원도관찰사·송촌부서·충주부사·공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대사헌이 되었으나, 임해군(臨海君)의 옥사가 일어나자 이에 관련된 사람을 모두 석방하라는 상소를 올린 뒤 고향으로 돌아갔다. 1613년 계축옥사가 일어나자 상소하여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구하려 하였으며, 향리에 백매원(伯梅園)을 세워 향우문도(鄕友門徒)를 모아 교육하였다. 그는 관도에 나왔으나 내직을 사양하고 주로 외직을 맡았다. 이것은 당쟁에 얽힌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중앙정계보다 외직을 맡아 자신의 덕치주의 이상인 지방학문을 융성시키고 민중을 교화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학문세계는 우주공간의 모든 것을 연구대상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경서(經書)·병학·의학·역사·천문·풍수지리 등 모든 분야에 통달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예학(禮學)은 특출하였다. 그의 예는 가깝고 먼 것을 정하고, 믿고 못믿음을 결정하고, 같고 다름을 구별하고, 옳고 그름을 밝히는 기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의 저서 《오선생예설분류 五先生禮說分類》는 정로(程顥)·정이(程頤)·장재(張載)·사마광(司馬光)·주희(朱熹)의 예설을 분류한 것으로 예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예를 통하여 이웃과 사회, 그리고 국가생활를 이롭게 한다는 도덕지상주의적인 이론을 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성리학 부분의 대표작으로는 《심경발휘 心經發揮》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그의 경사상(敬思想)을 토대로 하여 이황의 《심경후론 心經後論》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

우무석 시인에 의하면 한강 정구 선생의 한강 정구의 생애적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퇴계와 남명의 학통을 동시에 계승하면서 실용주의적 노선을 구축했다. : 회통적·독창적인 강안학풍(江岸学風)의 조성.
2. 다양한 분야의 서적을 찬술했다.
3. 서재를 경영하면서 교육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 한강정사(31세), 회연초담(41세), 사창서당(49세), 숙야재(61세), 무흘정사(62세), 노곡정사(70세), 사양정사(75세)
4. 외직을 통한 정치참여를 했다. : 다양한 지방행정을 담당. 덕치주의의 이상을 실현. 

뜻깊은 답사를 다녀온 뒤 모두 5곡부터 9곡까지 가을 답사를 기대하면서 귀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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