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자료

재경 창원군 학우회지 <창원> 창간호 (1956.12)

등록일 :
2018-04-18 04:32:47
작성자 :
문화유산육성과(055-225-7193)
조회수 :
248

재경창원군학우회 창간호

재경창원군학우회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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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제목 : <창원> 창간호 (1956년)
○ 기증자 : 김세욱 (원 자료 소유자 김종하 님의 차남)
○ 기증일 : 2018년 2월 10일(토)
○ 자료 활용 : 특별전시 및 상설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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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해설]

* 사진1  : <창원> 창간호 표지
* 사진2  : 김세욱 님
* 사진3,4 : 김종하님 부부
* 사진 5 : 창원향토예술제의 기념촬영 (촬영 장소 파악 중)

이 자료는  김세욱 님(원래 책의 소유자 김종하 님의 차남)으로부터 2018년 2월 10일(토)에 기증을 받았습니다. 김세욱 님은 선대의 문학작품을 연구하기 위해서 마산문학관에 들렀다가, 그것이 인연이 되어 기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김세욱 님은 <창원> 창간호를 기증한 이후 4집도 같이 기증하였습니다. 세욱 님은 흔히 '꽃대궐'로 알려진 고향의 봄 창작 배경지인 김씨 고가(김종영 생가)에서 오랫동안 지냈습니다.
두 번째 사진은 책의 원 소유자였던 김종하님의 신행길 사진입니다.(1968년 1월 무렵) 우측 뒤로 김씨 고가의 모습이 보입니다. 마지막  사진은 창원향토예술제 사진입니다. 신혼 초의 김종하님의 얼굴과 상당히 유사하고, 단정한 양복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면 신혼 초의 모습으로 여겨집니다. 시기를 유추해 보면 1968년~1970년대 초반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진 속의  <동산약국>이 어디인지 탐문을 해 보았으나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자료는 해방 이후 창원의 문학 및 문화를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해방 이후 본격적인 창원의 문화 및 문학 지형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자료들은 2018년 창원시립마산문학관 특별기획전 <큰 창원, 문인협회의 태동기>에서 전시될  예정입니다. 



:::::: [참고 자료] <창원> 격려사  :::::::

창원학우에게 기(寄)함 / 권오익

수백을 헤아리고 재경 창원 출신 학우들이 서로 밀접히 제휴함으로써 학창생활에 있어서의 공동이익을 제고하기 위하여 금춘에 창원학우회의 발족을 본 이래로 진지한 활동이 전개되어 그 제일차적 표현으로 이제 회지를 발간할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은 동향인의 정에서 또 학문의 영역에서 유영하고 있는 나의 개인적 연관성에서 송무백열(松茂栢悅)의 감흥을 이중으로 가지는 바이다. 여기에 있어서 연찬(硏鑽)에 매진하는 제군에게 소회의 일단을 피력하려 한다.

무릇 동향 학우회의 사명은 지연적 전통을 유대로 한 호상교류에 의하여 애향심을 발척(發掦)하고 향토의 발전향상에 자(資)하는데 있다. 이러한 사명이 자재(自在)하므로 단순한 친목과 사교를 목적으로 하는 친목회와 다르며 또 그 애향심은 애국심의 기초요 사회애의 본원으로서 그 향토발전에의 활동은 배타적인 지방열의 고취에 의한 일향(一鄕)만의 이익을 의도하는 것이 아니고 고복원시(高服遠視)적인 국가사회 발전에의 부분세력으로 작용하는 점에서 일족일벌(一族一閥)의 문호를 현양(現揚)하려 하는 화수회보소(花樹會譜所)류의 봉건(封建) 잔재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 그 지도 이념은 순수한 학도의 정신에서 출발하여 그 출신의 계층과 붕당을 초월하고 향토전반에 관한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점에서 자파자당의 이익쟁취에 광탈하는 지역정치단체와 엄연히 구별된다. 만일 이러한 사명을 망각하고 상거상교(相据相交)하는 무위에 끝난다면 창원학우회는 호사자의 유희에 불과할 것이며 또 향토애를 근시안적으로 오인한다면 도리어 사회의 대립파쟁(對立派爭)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며 더구나 학도의 순수성에 일말의 미운(迷雲)이 있다면 사도(邪道)의 역용(逆用)되고 과오를 범한 것이다. 근시(近時) 동향학우회가 층생첩출(層生疊出)하여 개중에는 노선을 그릇하여 일반사회의 빈축을 사고 있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므로 우리 창원학우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하여 현명과 열의가 있기를 특히 지도반 제군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그러면 제군은 우리 향토를 위하여 장차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우리의 고원(故園) 창원은 입지적 조건으로 보아 수토(首土)에서 멀어 천리를 격(隔)한 남국의 추변경(追邊境)에 위치하여 현대지명(現代之明)의 요충과 인연이 먼 한산한 농촌과 약간의 영세한 어포(漁浦)를 교유(擁有)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문구를 숭상하던 옛날에는 역대로 무게 있는 도사(道士)와 학자가 배출하여 향당(鄕黨)의 명성을 유지하였고 구한말 여명기에 있어서 우리의 선배는 신교육을 솔선도입하여 지방문화개척에 선험적 역할을 하였고 저- 삼일항쟁 당시에 있어서도 수많은 열혈지사의 우국의거는 청사에 빛난 바 있었으니 이것은 분명히 산자수명한 우리 고향의 과거를 장식하는 우리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최근세에 있어서도 정치경제사회의 모든 방면의 있어서 적적무문(寂寂無聞)하여 하향벽지(遐鄕僻地) 그대로의 모습에 전락하고 말았으니 금세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참괴(慚槐)가 이에 더할 바 없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 후진의 맹성(猛省)과 분투(奮鬪)가 요청되며 따라서 창원학우회의 특질적인 임무도 저절로 규정될 것이다.

 제군! 우리는 농촌출신이나, 오늘날 농촌의 피폐는 일반적 현상이거니와 실로 그 도가 지났으며 우리의 부노(父老)는 초근목피의 생활에 허덕이고 있으며 채귀(債鬼)에 울고 있다. 우리가 무슨 학과를 수득(修得)하고 장차 어떠한 분야에서 활동한다 하더라도 우리의 보금자리, 우리 인생행로의 발창지(發剏地)인 농촌의 운명을 항상 몽매간에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설사 우리 모두가 농촌개발 농민운동에 투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이러한 구상과 노력은 직접간접으로 농촌에 반영되어 농민에게 몽리(蒙利)되는 것이다. 제군이 재학 중에 실현할 수 있는 일로서 휴가 기타 귀향시를 이용하여 계몽운동을 전개하고 의학도는 무의촌을 진료하고 농민의 수지(收支) 실태, 교육기관의 분포 및 학령자(學齡者)의 취학률, 문화시설의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조사 파악하여 각자의 전공에 연구자료를 삼는 동시에 위정당로자(爲政當路者)에게 맹성(猛省)을 촉구함도 학도로서 의미 있는 일이며 고학생의 부업지도, 취직 알시(斡施) 등도 동향인의 미덕이다. 이러한 실천과업을 수행함으로써 창원학우회는 순수한 농촌 출신의 집단다운 진면목을 유지할 것이다.

우마의 조선(租先)이 거닐던 우구(佑舊)한 산하와 노목은 묵묵히 우리의 동태를 주시하고 있으며 수척한 우리 농민은 신진학도 제군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제군! 한층 더 용약매진(勇躍邁進)하지 않으려는가. (끝)

(필자 서울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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