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역사

창원역사

창원에서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지금까지 발굴된 자료에 의하면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면서 우리 고장에도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동읍 용산리 합산마을의 조개더미에서 채집된 빗살무늬 토기 조각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청동기 시대는 대체로 기원전 10세기경부터 시작되었고, 창원에 본격적으로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였다. 성산 패총 최하층의 무문토기는 후기 무문토기가 주류를 이루는데, 무문토기의 전통은 원삼국시대의 토기인 김해토기에 이어지고 있다.

우리 고장에서 확인된 이 시기의 유적은 성산 패총, 삼동동 유적, 도계동 유적, 다호리 유적, 화천리 유적 등이 있다.

삼국시대

창원은 변한연맹에 속해 있었던 것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데, 12국의 위치가 명확하지 않지만, 김해를 구야국, 함안을 안야국으로 볼 때, 그 사이에 위치한 주조마국이 창원~칠원 지역일 것으로 추측된다.

삼국사기

  • 이 근처에 포상팔국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삼국사기 "내해왕 14년 조"와 "물계자조"에는 포상팔국 중 골포, 칠포, 고사포의 나라 이름 셋이 나타나고 있으며, 뒤에 신라 경덕왕이 골포를 합포로 개칭한 것으로 보아, 창원은 골포에 속해 있었던 것 같다.
  •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전국을 9주 5소경으로 편제하고 그 밑에 군, 현을 두어 촌락을 지배하였다. 그때 창원은 삽량주(뒤에 양주로 개칭) 굴자 군으로 되었는데 삽량주에는 12개 군이 있었다고 한다.
  • 신라 35대 경덕왕은 전국 지명을 한자로 표기하여 굴자 군을 의안 군으로 개칭하고, 골포현을 합포로 개칭하여 의안 군에 속하게 하였다.

고려 현종 9년(1018년)

의안 군을 이웃의 웅신현과 같이 금주(현재의 김해)에 속하게 하고, 의안과 합포에 각각 감무를 두었다.

충렬왕 8년(1282년)

  • 의안 군을 이웃의 웅신현과 같이 금주(현재의 김해)에 속하게 하고, 의안과 합포에 각각 감무를 두었다.
  • 시에 의안을 의창으로, 합포를 회원으로 개칭하여 각각 현령을 두었는데, 의창은 별호를 회산, 회원은 환주라고 하였다.

조선 태종 8년(1408년)

  • 7월에 의창, 회원 두 현을 합하여 창원 부로 개칭, 승격하여 판관을 두었으며, 태종 15년(1415년)에 창원도 호 부로 승격되었다가 선조 대에 창원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한때 칠원 현이 창원에 합쳐졌다가 광해 9년(1617년)에 분리되었다.
  • 인조 5년(1627년)에는 진해 현(현재의 삼진지방)이 또한 창원에 속했다가, 인조 7년 다시 창원에서 분리되었다.

현종 2년(1661년)

  • 창원 읍에서 전패를 유실한 불상사가 일어나 조정에서 그 책임을 물어 창원대도호부를 현으로 강등시켰으나, 동 11년(1670년)에 다시 대도호부로 승격시켰다. 고종 32년(1895년)에 23부제 실시로 진주부 예하 창원군이 되었다.
  • 건양 원년 1896년 8월 4일자(칙령 제36호)로 13도 제 실시에 따라 경상남도의 창원군이 되었다.

광무 3년(1899년)

5월 6일 칙령 제16호로 창원 군은 창원 부로 승격되었다. 광무 7년(1903년) 7월 3일자 칙령 제10호로 창원 부가 창원 군으로 되었다.

광무 10년 (1906년)

9월 24일자 칙령 제48호로 창원 부로 개칭하고 부윤을 두었다. 동 일자 칙령 제49호로 진해군 대산 면과 칠원군, 구산 면이 창원 부에 편입되고, 진주 군의 양전 면이 진해 군에 편입되었다.

융희 2년 (1908년)

9월 14일자 칙령 제69호로 진해 군과 웅천 군이 창원 부에 합병되고, 창원 군이 함안 군에 합병되었다.

1910년 ~ 1913년

  • 1910년 10월 1일자 부령 제7호로 창원 부가 마산 부로 개칭되었다.
  • 1913년 12월 29일자 부령 제111호로 창원군이 분치되어 마산부 부내, 상남, 하남, 동, 북, 내서, 구산, 대산, 진동, 진북, 진서, 양전, 웅읍, 웅동, 천가, 진해, 웅서, 외서면에서 마산 부에 속하지 않는 지역 등 18개 면이었던 면제는 다음해 3월 1일 부터 시행되면서, 면의 명칭과 관할구역은 경상남도령 제2호에 의하여 웅남면, 진전면, 진동면, 구산면, 내서면, 부내면, 동면, 대산면, 상남면, 진해면, 웅읍면, 웅동면, 천가면, 진북면, 북면 등 15개 면으로 확정되어 1914년 4월 1일 부터 시행하였다.

1931년 ~ 1942년

  • 1931년 4월 1일 부터 시행된 부령 제103호에 의하여 진해 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창원군은 1읍 14면이 되었다.
  • 1942년 9월 30일 부령 제242호로 마산 부의 관할구역이 확장되는바, 즉 창원군 창원면의 봉암리, 내서면의 교방리, 회원리, 산호리, 석전리와 구산면의 가포리가 마산 부에 편입되었다.

1955년

1955년 9월 1일자 법률 제73호로 진해 읍이 시로 승격하였다.

1973년 ~ 1976년

  • 1973년 7월 1일자 대통령령 제6542호로 창원면, 상남면, 웅남면 전역과 내서면의 구암, 합성, 회성, 두 척의 4개 리와 구산면의 예곡, 우산, 현동, 덕동의 4개 리가 마산시에 편입되어 웅천면 전역이 진해시에 편입되었다.
  • 1974년 4월 1일 건설부고시 제92호로 마산시의 두대동, 덕정동, 삼동동, 반송동, 연덕동, 용지동, 목동, 토월동, 외동, 정동, 가음정동, 남산동 등 12개 동 전역과 서상동과 27개 동 일부 지역 43,342천㎡를 대규모 기계공업기지 건설을 위하여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지정하였다.
  • 1976년 9월 1일자 경상남도조례 제853호로 경상남도 창원지구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0년 ~ 1983년

  • 1980년 4월 1일자 법률 제3188호로 창원지구출장소 관할 전역과 마산시 의창동을 편입하여 18개 행정 동으로 창원시를 설치하였다.
  • 1983년 2월 15일 대통령령 제11027호로 창원시 소계동 일부 지역이 마산시에 편입되었고,

1990년 ~ 1997년

  • 1990년 4월 30일 창원시 조례 제751호로 토월동이 신월동, 사파동으로,
  • 1991년 8월 28에는 창원시 조례 제849호로 상북동이 명서동, 봉곡동으로, 반송동이 반림동, 반지동으로 각각 분동되었다.
  • 1992년 9월 1일 창원시 조례 제886호로 명서동이 명서1동과 명서2동으로 분동되었으며,
  • 1994년 9월 1일 창원시 조례 제1000호에 의거 남산동이 남산동, 대방동으로 분동되었으며,
  •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동면, 북면, 대산면이 통합되어 1995년 3월 2일 창원시 조례 제150호로 동면을 동읍으로 승격하고 의안동을 의안동과 도계동으로, 사파동을 사파동과 상남동으로 분동하여 27개 읍면동으로 시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 1997년 7월 14일 전국 최초로 '대동제'를 도입하여 기존의 시지역 24개 동을 12개 동으로 통폐합함으로써 지금의 15개 읍·면·동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 현재

그 후 2010년 7월 1일자로 마산시, 진해시와 통합하여 새로운 창원시가 시작되었다.

사진으로 보는 역사갤러리

옛 창원군청옛 창원군청
복구하는 창원 예전모습복구하는 창원 예전모습
창원시청 예전모습창원시청 예전모습
현재의 창원시청현재의 창원시청
창원 전경창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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