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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국가산업단지 지정 50주년 기념행사
4. 23.(화) ~ 4. 27.(토) / CECO 및 창원광장
주최 : 산업통상자원부, 경상남도
주관 : 창원특례시, 한국산업단자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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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분 다큐

2021년 역사1분 다큐 통합영상

등록일
2021-12-29 06:00:17
조회수 :
585
여기 초점을 받으면 키보드 화살표 상(↑)·하(↓) 키로 대본 스크롤을 할 수 있습니다. 2021년 역사1분 다큐 통합영상

어떻게 하면
위대한 과거를 기억할 수 있을까?

오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숭고한 가치는 무엇일까?

우리의 내일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창원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방법...
우리 곁에, 독립운동

NA)
어떻게 하면
위대한 과거를 기억할 수 있을까?

오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숭고한 가치는 무엇일까?

우리의 내일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창원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방법...
우리 곁에, 독립운동

창원을 기억하다
역사 1분다큐 RE:

전세계 곳곳
화폐속에 새겨진 가치
창원에도 있다

NA)
전 세계 곳곳에서 
화폐 속에 새겨진 가치
우리 창원에도 있다.
                                     
NA)
창원사랑상품권
‘누비전’에 새겨진 
5명의 창원독립운동가
주기철, 이교재, 김진훈, 명도석, 배중세

누비전에 새겨진
5명의 창원 독립운동가

주기철(1897~1944) 건국훈장 독립장
[주요업적]
선생과 종교인으로서 애국사상을 고취
일본의 신사참배에 항거

이교재(1887~1933) 건국훈장 독립장
[주요업적]
1919년 3·1독립만세 운동 때
독립선언서 배포
이후 임시정부에서 활동
상해 임시정부가 인정한 독립운동가

배중세(1893~1944) 건국훈장 애국장
[주요업적]
의열단을 오직
중국과 국내를 오가며
무력을 통한 항일투쟁을 전개

김진훈(1924~1945) 건국훈장 애국장
[주요업적]
재학 중 도선독립장을 조직해 항일운동

명도석(1885~1954) 건국훈장 애국장
[주요업적]
항일정신 계몽활동
독립운동단체 신간회의 마산지회
요직을 역임하며 앞장 서 민족운동

창원의 오늘을 이끄는 힘!

NA)
창원의 오늘을 이끄는 힘!
창원의 
독립운동가를 기억합니다.
독립운동 정신을 
우리 일상에 새깁니다.

- 주기철목사기념관
- 독립운동가 배중세 추념비
- 허당로

NA)
창원의 
독립운동가를 기억합니다.
독립운동 정신을 
우리 일상에 새깁니다.

내 곁에,
우리 곁에, 독립운동

NA)
내 곁에 우리 곁에 독립운동

창원 역사 1분다큐 RE: PLUS CHANGWON

NA)
이 캠페인은 사람중심, 새로운 창원과 함께합니다.
출생연도: 1912년 1월 15일 
나이: 109세.
태어난 곳 : 진해 중원로터리
보험가: 534억 원
저는 누구일까요?  
                          
창원을 기억하다
역사 1분다큐 RE:
[100년의 기억]

1912년 진해신도시 건설과 함께 건립

외부와의 연락
일본본국과의 소통창구

NA)
1912년 1월 15일
진해 중원로터리에서 태어난 저는 
외부와 연락
일본본국과의 소통 창구

일제 식민통치에 필요한 정보를 
본국으로 보내는 일을 했습니다.

3방도로 중앙
삼각형 대지에 지은 단층 목조건물

NA)
3방도로 중앙에 있는 
삼각형 대지에 지은 단층 목조건물

입구는 좁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점차 넓어지는 Y자 형태로  

정면입구 양측
배흘림이 있는 토스카나 양식 두리기둥

NA)
정면 입구 양측의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이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1981년
사적 291호 문화재 지정

NA)
1981년 사적 291호 
문화재로 지정되어

대한민국 문화재 중
최고 보험가를 가지고 있는

제 이름은 진해우체국입니다.

NA)
제 이름은 진해우체국입니다.

창원대학교 건축설계학부 유진상 교수
“사연이 되게 많은 건물인데
창원에 있는 근대 건조물 중에 가장 가치 있는 건물이라 할 수 있고
우리나라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같은 건물이기도 합니다.”

NA)
올해에도 어김없이 벚꽃이 피었습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을 따라가다 보면
슬픈 과거와 마주하곤 합니다.

전국 최초 계획도시이자
일제 군항 도시였던 진해

NA)
전국 최초의 계획도시이자,
일제 군항 도시라는 아픈 역사입니다.

하지만 결코 과거로 향하는 
여정이 아닙니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여기
진해에서
저는 창원의 내일을 기다립니다.

NA)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이뤄지는 
여기, 진해에서 

저는 창원의 내일을 기다립니다.

창원 역사 1분다큐 RE: PLUS CHANGWON

NA)
이 캠페인은 사람중심, 새로운 창원과 함께합니다.
Q.1950년대 한국영화의 메카는 어디?

국제화제가 열리는 부천?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부천?”

예나 지금이나 서울 충무로겠죠
“음.. 서울 충무로?”

BIFF광장이 있는 부산 남포동 아닐까요?
“남포동 아니었을까요?”

70여년 전
아시아의 작은 할리우드
창원

-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여우비공원 인근

NA)
70여년 전 아시아의 작은 할리우드로 불린 곳
바로 창원의 상남영화제작소입니다.

                                       
창원을 기억하다
역사 1분다큐 RE:
[상남영화제작소]
미공보원(USIS) 상남영화제작소


#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치열했던 1950년대
# 미공보원의 각종 선전 활동을 위해 만들어진 상남영화제작소

NA)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치열했던 1950년대
상남영화제작소는 미공보원의 각종 선전 활동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성철 교수 창원대학교 사회학과
“상남영화제작소 옛터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표지석입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서울에 있던 미공보원 영화과가 진해로 이전하게 됩니다.
그러다 진해조차 안전하지 못해서 이 곳 창원으로 이전하게 된 것입니다.“
-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 중앙평생학습센터

영화장비가 제대로 없었던 1950년대
뉴스영화 721편
문화영화 수백편 제작

- 상남영화제작소와 직원들의 모습

NA)
제대로 된 영화 장비가 없었던 1950년대
상남영화제작소에서는 
수백편의 영화가 만들어졌는데요.

“2021년 오스카 수상자는
여우주연상 윤어정입니다.”

“(배우 윤여정) 저의 첫 감독님인
김기영 감독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는 매우 천재적인 감독이었으며...”

김기영 감독 첫 장편영화
<죽엄의 상자(1955)>
상남영화제작소 제작

<거리의 등대(1955)>
<지방신문 편집자(1958)>
당시 창원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들

- <지방신문 편집자(1958)> 감독 배석인

NA)
한국 영화의 거장 김기영 감독의 첫 장편영화 <죽엄의 상자>를
상남영화제작소에서 제작했습니다.

특히 창원을 배경으로 한 <거리의 등대>와 <지방신문편집자>는
당시 창원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모자람이 없습니다.

계획도시 공업도시 친환경도시
창원을 부르는 수많은 이름들

NA)
창원 앞에 붙는 수많은 이름들
상남영화제작소를 기억한다면 영화의 도시 창원이라는
수식어도 한 번 붙여보는 건 어떨까요?


창원 역사 1분다큐 RE: PLUS CHANGWON

NA)
이 캠페인은 사람중심, 새로운 창원과 함께합니다.
피카소 
이중섭
고갱
앙리 마티스
정선
클림트
반 고흐
밀레
르누아르
에곤 실레
세잔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죠.”    

실제로 본적이 없다?

“서울 전시회에 가면 볼 수 있겠죠” 

창원을 기억하다
역사 1분다큐 RE:
[우리에게 미술을 허하라!]


추상조각의 선구자
김종영 
(1915∼1982)

창원이 낳은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1923-1995) 

마산어시장의 화가
현재호
(1935-2004)

추상미술 1세대 
흑백다방 
유택렬
(1924~1999) 

강신석 이림 이상갑
정상돌 권영호 남정현
최운 김주석 류시원
유명 
       .....무명
창원의 미술가들...         


1947년
제1회 미술전람회 개최

- 제 1회 미술전람회 (1947, 마산백화점)

1955년
전국최초 미술단체 흑마회 창립
화랑이 없어 전시에 제약이 많았던 시절
국내최초 가두전시회 개최

- 제 1회 흑마전 (1955, 남성동 제일은행 광장)

1973년 개관
지역 미술계의 버팀목 
마산 동서화랑

- 마산미술협회 회원전 (1979, 동서화랑)

1955년 개업
서정주 김춘수 유치환 윤이상...
오랜 세월 예술인들의 사랑방 
진해 흑백다방  

- 진해군항제 초대작가전 (1962, 흑백다방)
- 김수돈 김주석 시화 전시장 앞(1957, 흑백다방)

황무현 교수(마산대학교 아동미술학과)
“창원에도 대표적인 현대미술가들이 있었습니다
현대미술의 1세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수도권에 대부분의 문화가 집중되어 있고
창원에는 문화를 누릴만한 여건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 문신미술관
- 흑백다방
- 유택렬 미술관
- 김종열 생가

예향의 도시에서 
끈길기게 피어난
창원의 미술역사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없는 것

미술을 누릴 권리
대한민국 국립 현대미술관 
4개 중 3개 수도권 집중

설마 이건희 컬렉션도...
수도권 유치?

점점 심해지는 
문화양극화
경제 양극화

우리에게 
미술을 허하라!

이 캠페인은 사람중심,
새로운 창원과 함께합니다.

창원 역사 1분다큐 RE: PLUS CHANGWON

NA)
이 캠페인은 사람중심, 새로운 창원과 함께합니다.
재료연구원 승격

수소산업특별시

강소 연구개발 특구

전국최초 스마트그린 산단

미래로 달려가는 창원

NA)
창원의 미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과거와 연결되어 진보하고 발전합니다. 

창원을 기억하다
역사 1분다큐 RE:
[철의 도시에 스마트를 입히다]


창원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

NA)
창원의 미래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창원기계공업단지의 중심 성산패총
성산패총[사적 제 240호]
창원시 성산구 외동에 위치한 철기시대 초기의 대규모 패총

1974년
창원국가공업단지 조성

NA)
창원기계공업단지 중심에 있는 
성산패총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창원공단 성산패총에서
철기시대 유물 철토

쇠를 녹이던 야철지가 나왔다”

NA)
창원국가공업단지 조성이 한창이던 1974년
성산패총에서 발견된 야철지는
창원이 삼한시대 철 생산의 중심지임을 알렸습니다.

야철지
3세기경 철을 생산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는 유적으로
국내 최초로 발견된 철 생산 관련 유적


왜, 낙랑과 대방에 철을 수출한 고대 야철지
1970년대 국내 최대 기계공업단지
“철의 도시와 기계공업단지가 만나다“
창원

NA)
왜와 중국에 철을 수출한 
고대 야철지 창원과
1970년대 국내최대 기계공업의 요람  
현대 창원의 만남은 운명이었습니다.


창원대학교 역사학과 남재우 교수
“1970년대 창원이 기계공업단지로 바뀌었죠.
(3세기경) 철의 생산지였던 창원이 국내최대의 기계공업단지로 바뀐 것은
역사적은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고대 철의 중심에서 
현대 한국기계공업의 요람으로!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창원
스마트 창원이 시작됩니다!

NA)
고대 철의 중심에서 
현대 한국기계공업의 요람으로!
시대를 이끌어 온 창원.

이제, 새로운 미래를 꿈꿉니다.

사람과 산업
기술과 문화가 공존하는  
스마트 창원이 시작됩니다.


창원 역사 1분다큐 RE: PLUS CHANGWON

NA)
이 캠페인은 사람중심, 새로운 창원과 함께합니다.

조선인은 먹을 수 없었던 물

일제 강점기 마산 최초 상수도를 아십니까?

Q.마산 최초 상수도를 아시나요?
“마산최초 상수도? 모르겠는데요.”
“얼핏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아니오. 몰라요...”
“우리 지역에 그런 곳이 있어요?” 

창원을 기억하다
역사 1분다큐 RE:
[상남영화제작소]
마산 최초 상수도
봉암수원지


봉암수원지
-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 산 12-1

na> 
팔용산 중턱 고요한 호수
봉암수원지

도심 속 유원지
봉암수원지의 시작
콜레라

na> 
오늘도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곳의 시작은..
콜레라였다.

일제강점기 1920년
동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콜레라
-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 산 12-1

na>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
동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콜레라

1920년 8월경에
마산 시내를 엄습한 콜레라로 인해서
아침에 만난 사람이 저녁이 되면 격리병원이나 묘지로 가고 만다.
- 김형윤의 [마산야화]中에서

na>
당시 인구 2만의 도시 마산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콜레라로 목숨을 잃었다.

전염병에 취약한 공동우물 대신
깨끗한 상수도가 필요했던 일본

na>
콜레라 전염에 취약한 공동 우물대신 
깨끗한 상수도가 필요했던 일본인들. 

“팔용산 입구를 막아 상수도를 만들자!”

na>
팔용산 입구를 막아 
상수도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1927년 5월 ~ 1930년 3월까지
3년간 조선인의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마산 최초 봉암수원지
- 수원지에서 정수장까지의 송수관이 표시된 도면

na>
3년 동안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마산최초 상수도
봉암수원지

하지만
조선인들의 몫이 아니었던
봉암수원지 물

na>
하지만
마산최초 상수도는 
조선인들의 몫이 아니었다. 

허정도 경상남도 총괄 건축가
“봉암수원지를 처음 건축할 때는
1만 6천 명의 급수를 담당하겠다고 지었는데
실제 준공이 되고 난 이후에는
4천 명이 먹었다고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일본인들이 모여 사는 신마산에
일본인 4천 여명이 살았기 때문에
그 일본인들과 일부 부자 조선인들에게
급수가 되어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수돗물을 먹는 사람이 4천 명
가구수는 800호다.
- 1941년 [양진마산의 전모]中에서
- 약신마산의 전모
  일제강점기 마산 지역의 지리,역사,공공 및 민간단체, 산업 등
  지역의 전반벅 현황을 담아 편찬한 단행본
  
na>
마산최초의 상수도였지만
대다수의 조선인들은 먹을 수 없었던
봉암수원지 물

90년 전
식민지 조선의 아픔을 안은 채
오늘도 우리 곁에 흐르고 있는
봉암수원지

na>
90년 전,
식민지 조선의 아픔을 안은 채, 
오늘도 우리 곁에 흐르고 있다.

창원 역사 1분다큐 RE: PLUS CHANGWON

NA)
이 캠페인은 사람중심, 새로운 창원과 함께합니다.
NA)
1982년 5월 2일 
그날은 일요일, 
일요일은 대부분 고요한 법이지만
그날의 창원은 들썩였다.

1982년 5월 2일 일요일
그날을 기억하십니까?

창원을 기억하다
역사 1분다큐 RE:
추억 돋는 섬, 돝섬


창원 사람은? 다 – 가봤다!

누운 형상이 돼지를 닮아
돼지의 옛날 말 [돝]을
이름 붙인 섬

- 돝섬의 마스코트 황금돼지상 “저와 닮았죠?”

창원사람이라면 안 가본 사람 빼고는 
다 가봤다는 그 섬, 
누운 형상이 돼지를 닮았다는 그 섬, 

1982년 5월 2일 국내최초 해상유원지 돝섬 개장

NA)
돝섬 유원지의 시작은 1982년 5월 2일이다.
마산항에서 배로 10분
수영을 하면?

NA)
마산항에서 배를 타고 10분.
수영을 하면...?

80년대,  헤엄쳐서 돝섬까지 간 당시 10대
“라뗴는 말야~ 돝섬까지 헤엄을 쳐서 갔어~”(실화냐..?)
“우리 때는 돝섬까지 헤엄을 쳐서 갔다 아이가~”  
믿거나~ 말거나~
돝섬까지 헤엄쳐서도 가던 80년대

1986년 100만 명이 오고 간
전국 최고 관광지!
돝섬

NA)
돝섬까지 헤엄을 쳐서 가던 80년대.
돝섬은 연간 100만 명이 오고 갈 정도로 
전국 최고의 관광지였다.

8,90년대에 보기 힘든
동물원가 서커스 공연 관람
 
물개쇼에 감동받았던 당시 초등학생
“소풍가서 본 물개쇼와 서커스... 잊을 수 없죠!”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갔었는데... 거기서 봤던
서커스랑... 물개쇼... 이런 게 제일 좋았어요. 따봉!”

NA)
엄마 손잡고, 친구 손잡고, 연인 손잡고, 
너도 나도 손에 손 잡고 몰려갔던
돝섬.

최악의 태풍 ‘매미’ 돝섬 강타
65억원의 재산 피해
44년만의 강력한 태풍 매미
2009년 돝섬 유원지 폐장

NA)
하지만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점점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2011년 4월 이후 자연테마공원으로 다시 부활!

2010년 통합창원시와 함께 재개장
2011년 자연테마공원으로 부활

창원의 랜드마크로!
화려한 미래를 꿈꾸는 돝섬

NA)
경남을 넘어 전국으로!
마산해양신도시와 함께 
창원의 랜드마크로 화려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창원 역사 1분다큐 RE: PLUS CHANGWON

NA)
이 캠페인은 사람중심, 새로운 창원과 함께합니다.
진해 중원로터리에서 
북원로터리로 가는 길 시작점에
오랜 다방이 하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외관은 낡았지만

그 속에 흐르는 
문화예술의 향기는

흑 백 
그 명암만큼 깊습니다.

NA)
진해 중원로터리에서 
북원로터리로 가는 길 시작점에
오랜 다방이 하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외관은 낡았지만

그 속에 흐르는 
문화예술의 향기는

흑과 백 
그 명암만큼 깊습니다.

창원을 기억하다
역사 1분다큐 RE:
오래된 미래유산, 흑백다방

서울 학림다방(1956)
전주 삼양다방(1952)
진해 흑백다방(1955)

NA)
서울 학림다방, 전주 삼양다방과 함께
우리나라 다방의 명소라 불리는
진해 흑백다방.

1955년 서양화가 유택렬 화백
고전음악다방 카르멘 인수 
- 경남 추상미술 1세대 故유택렬 화백

NA)
흑백의 역사는
1955년 서양화가 유택렬 화백이 
고전 음악다방 칼멘을 인수하면서
시작됩니다.

- 1912년에 지은 목조건물 흑백다방

故유택렬 화백이 직접 쓴
흑백다방의 간판

NA)
1912년에 지은 목조건물 위에 
유택렬 화백이 직접 쓴 
간판을 걸고 시작한 흑백은 

한국 전쟁 이후 피난 온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
- 한국 대표 화가 이중섭
- 세계적 현대 음악가 윤이상
- 통영의 피카소 전혁림
- 꽃의 시인 김춘수

NA)
내로라하는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자

오랜 세월 사랑받은
대체불가 문화공간
- 1960~70년대 활동했던 예술인들의 전시회 기념사진

NA)
오랜 세월 대체불가능한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사랑받았습니다.

안성영 (故유택렬 화백 제자)
“1999년 돌아가신 유택렬 화백의 뒤를 이은 둘째딸 유경아가 2020년에 작고할 때까지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자 시민문화예술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2015년 창원시 근대건조물 지정
2018년 근대건조물 건축물 정비공사 진행
유경아씨 작고 이후 잠시 문을 닫은 흑백

NA)
2015년 창원시 근대건조물로 지정
새로운 미래를 꿈꾸던 흑백다방.

비록 잠시 닫혀있지만
그 안에 꽉 차 있는 

문화예술의 향기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창원의 오래된 유산
흑백의 향기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창원 역사 1분다큐 RE: PLUS CHANGWON

NA)
이 캠페인은 사람중심, 새로운 창원과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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