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마산포가 출현된 것은 조선중기 이후 18대 현종 4년 1663년 대동법이 시행됨에 따라 낙동강 하류 유역 13군의 조공미를 서울로 조운하는 격납고인 조창이 설치됨으로써 이 일대에 공관과 민가가 순식간에 중성리·동성리·오산리·서성리·성산리·성호리 등 6개리로 형성되면서 오늘날의 마산의 기반이 이루어지면서이다.
공관과 민가가 번성을 이루면서 한 때 전염병으로 많은 희생이 생기자 이 재해를 면하기 위하여 마산이라 개칭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馬山'의 유래라 하기도 한다. 또는 마산이란 명칭은 고려시대에는 보이지 않고 『신증 동국여지승람』 창원도호부조에 합포와 아울러 마산포란 명칭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현 마산시 지명이 여기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하기도 한다.
조선 말 광무 3년인 1899년 5월 1일 마산포는 개항장으로 발족되고 창원감리서가 설치되어 외교사무와 지방행정을 관장하고 또한 각국 거류지제가 설치됨에 따라 일본 영사관이 설치되었다. 1906년 영사관은 이사청으로 개편되고 1914년 부제실시로 마산부가 되었으며 1945년 광복 후 1949년 6월 29일 개항장으로 지정되고 그 해 8월 15일 부로 마산시가 되었다.
그 후 2010년 7월 1일부로 창원시로 통합되면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로 나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