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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역사를 간직한 진해, 그리고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창원사람 28호 [창원의 오래된 미래] -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부터 해군의 역사까지

2022-07-07

우리는 영예(榮譽)로운 충무공의 후예이다.

하나. 명령에 죽고 사는 해군이 되자.

하나. 책임을 완수하는 해군이 되자.

하나. 전기(戰技)를 갈고 닦는 해군이 되자.

하나. 전우애로 뭉쳐진 해군이 되자.

하나. 싸우면 이기는 해군이 되자.

- 해군의 다짐 -

 

‘우리의 바다는 우리가 지킨다.’ 배를 뒤집어놓은 듯한 모양의 흰 모자를 쓰고 새하얀 정복을 입은 이들. 대한민국 해군은 바로 진해 군항을 중심으로 태동했습니다. 벚꽃 피는 계절이면 군항제를 크게 열기도 하는 이곳. 창원 진해에 위치한 해군 진해기지사령부에는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가 여럿 있습니다. 오늘은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대한민국 해군의 역사와 해군 진해기지사령부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필승’  해군의 역사

 

‘필승!’ 대한민국 해군은 상륙작전을 포함한 해상작전을 주 임무로 국가 보위와 번영을 뒷받침하는 핵심 전력입니다. 해군은 1945년 11월 11일 고(故) 손원일 제독이 중심이 돼 창설한 ‘해방병단’을 모체로 합니다. 해방병단 단원들은 진해군항 내에 위치한 구 일본해군 항무부 건물에 입주하여 태극기를 게양하고 첫 집무를 개시했습니다. 그리고 해방병단은 ‘조선해안경비대’를 거쳐 대한민국 해군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해군창설의 주역’인 손원일 제독은 참모총장 재임 당시 6. 25 전쟁이 발발하자 UN해군과 함께 동·서·남해에서 제해권을 확보했던 인물입니다. 특히 6월 25일 대한해협 해전을 시작으로 통영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 서울탈환작전 등 해·육상 주요 작전을 성공적으로 지휘하여 6.25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데 크게 공헌하였습니다.

 

해군은 1946년에 진해를 중심으로 해상경비를 개시한 이래 인천기지 창설을 시발로 목포·묵호·부산·군산·포항·진해에 해군기지를 창설하여 해안 경비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 바다를 지켜내는 것에서 머물지 않고 각 삶의 현장에서 국민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역사를 간직한 진해

 

진해는 일본 해군이 한반도 통치 기간 중 군항으로 건설하여 활용했던 지역입니다. 1904년 러일 전쟁(1904~1905년)이 발발하자 일본은 전략상 필요한 지역을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한일의정서를 대한제국과 체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광대한 토지를 군사 용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진해만의 전략적 가치를 실감했습니다. 진해에 군항을 두어 대한해협을 장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바다를 제패할 수 있다는 전략이었습니다. 대한해협의 길목인 진해만을 해군의 기지로 육성한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1909년 6월 30일부터 진해지역에 군항 건설을 시작했고 지역민들은 항변도 제대로 못하고 강제로 내쫓겼습니다.

 

이렇듯 해군기지사령부는 일제강점기의 가슴 아픈 역사에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따라서 현재 해군 진해기지사령부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 해군과 관련된 등록문화재가 산재해 있습니다. 진해요항부 사령부가 등록문화재 제194호이고, 진해방비대 사령부가 제195호, 진해방비대 사령부 별관이 제196호, 진해요양부 병원이 제197호입니다.

 

 

구 진해요항부 사령부

 

100여 년의 오랜 세월에도 외관 및 내부가 크게 훼손되지 않고 원형을 유지한 곳. 이 건물은 1914년 일제강점기 당시 진해에 자리 잡은 일본 해군기지인 진해요항부 사령부로 건립되었습니다. 1916년 개청한 ‘요항’이라는 명칭은 군항 아래 등급으로서 군사적 경비를 해야 하는 항구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를 한국 해군의 모체인 해방병단 총사령부가 진해특설기지사령부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진해요항부 사령부 건물은 가장 화려한 외관을 자랑합니다. 눈에 띄는 것은 르네상스 절충양식으로 독일풍이 강하다는 특징입니다. 적벽돌로 된 좌우 대칭의 건물이며 정교하게 시공된 고전 부흥양식의 석재 포치(지붕이 돌출되어 지어진 건물의 출입구)가 있습니다. 조형미가 뛰어난 이 건물은 정면 중앙부에 2층 높이의 현관 포치를 돌출시켜 권위와 상징성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구 진해방비대 사령부

 

구 진해방비대 사령부는 일본 해군의 방비대 사령부로 사용해 1945년 광복 이후 최근까지 한국 해군의 진해기지사령부 건물로 사용된 우수한 근대 건축입니다. 구 진해방비대는 요항부에 속하여 해상 방어에 관한 일을 하며, 창건 당시 거제도 송진포에 있었으나 영구기지로서는 부적합하여 진해로 이전하였습니다. 구 진해방비대 사령부 건물(본관)은 1912년 11월에 착공하여 1914년 3월에 준공한 진해지역 군항 시설 중 가장 초기에 건축된 건물 중 하나입니다. 일제 초기에 지은 르네상스식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 근대 건축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일 뿐 아니라 일본 해군의 침략 과정을 보여 주는 군사 시설입니다.

 

구 진해요항부 병원

 

구 진해요항부 병원은 1912년 일본 해군을 위해 의료시설로 건립한 건물입니다. 적벽돌 조적조(돌, 벽돌, 콘크리트 블록 등으로 쌓아 올려서 벽을 만드는 건축 구조) 단층 건물로 평면은 ㄷ자형 평면을 기본 구조로 하여 의료실, 식당, 설비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적인 형태는 진해 해군기지 내 주요 건물에 사용된 다른 건물들과 유사하지만, 전반적으로 정교한 벽돌 쌓기와 간결하고 짜임새 있는 입면 및 공간 구성이 특징입니다.

일본해군 전용 의료시설로 이용되던 이 건물은 광복 후부터 2000년까지 국군 진해병원으로 사용되었고 2000년부터는 육군 관할에서 해군 관할로 바뀌어 해군 해양의료원으로 쓰이다가 진해기지사령부 근무지원전대 본관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노화하여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해군이 우리 삶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해지는 6월. 진해 기지사령부 내 다양한 문화재는 여전히 건축적·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아픔과 우리 해군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이곳을 올해부터는 진해군항문화탐방을 통해 접하실 수 있습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여 군항 문화를 탐방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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