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문화원 벚소리합창단 "노래가 있는 곳에 젊음과 행복이 있습니다"
창원사람 29호 [노인독립만세] - 평균 65세 시니어 혼성 4부, 이런 합창단 보신 적 있으세요?
벚소리합창단의 정기 연습이 열리는 화요일 오후. 진해문화원에 도착해 노랫소리를 따라연습실 문을 열어보니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단원들이 한창 화음을 쌓아가고 있었다. 공연을 이틀 앞두고 그들이 마지막 연습을 하고 있는 노래는 김광석의 <일어나>였다.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일어나. 일어나. 봄의 새싹들처럼.’ 평균 연령 65세, 인생 2막을 노래와 함께 보내고 있는 단원들의 화음을 듣고 있자니 ‘봄의 새싹들처럼 다시 한번 일어나자’는 노래 가사가 마치 벚소리합창단의 주제가처럼 들렸다
인생 2막을 노래와 함께 보내고 있는 단원들
진해문화원 벚소리합창단은 2010년 6월, 우영자 전 진해문화원장이 재직 당시 창단한 합창단이다. 노래를 좋아하는60세 이상 시민들을 단원으로 모집하고, 친구의 ‘벗’과 벚꽃의 도시인 진해를 나타내기 위해 합창단의 이름을 ‘벚소리’로 지었다.
“초고령화 시대에 어떻게 하면 즐거운 노년의 삶을 보낼 수있을지 고민이 많았어요. 마침 제가 노래를 좋아하기도 했고, 노래가 있는 곳엔 항상 행복이 따라오잖아요? 그래서 진해에도 시니어 합창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우영자 전 진해문화원장)
벚소리합창단의 단원은 현재 40여 명이다. 창단한 지 햇수로 13년이 되었지만, 창단 회원들이 거의 그대로 활동을 이어올 만큼 합창단에 대한 단원들의 애정은 아주 높다. 일주일에 한 번, 매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진행되는 연습에도 빠지는 이들이 거의 없다. 퇴직 후 2015년부터 벚소리합창단 단원으로 활동을 한 서일옥 부단장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화요일 오후는 일정을 비워둔다. 합창 연습이 1순위로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학교 현장에 있을 때도 늘 노래를 좋아했어요. KBS합창단 단원으로 활동을 했고, 교사합창단 단장을 맡기도 했고요. 퇴직 후에도 계속 노래를 하고 싶었는데, 벚소리를 만나서 참 감사한 일이죠.” (서일옥 부단장)
“저는 2003년 해군 제독으로 전역을 했습니다. 그 후 여러 사회활동을 이어오던 중, 2010년에 우영자 원장님께서 벚소리합창단 초대 단장을 맡아 달라더군요. 그 해는 천안함 사건으로 많은 장병들이 사망해 실의에 빠져 있었는데, 합창단 단복이 해군을 상징하는 세일러복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단장을 맡아야겠다 결심을 했지요.” (전상중 초대 단장)
경남에도 여러 시니어 합창단이 있지만 그중 벚소리합창단은 특별한 점이 많다. 우선 흔치 않은 시니어 혼성 4부 합창단이다. 덕분에 테너, 알토, 소프라노, 베이스 네 파트의 목소리가 한데 어울려 더욱 풍성한 화음을 자랑한다. 단복 또한 남다르다. 공연의 성격에 따라 드레스나 정장, 한복을 입기도 하지만 벚소리합창단을 상징하는 단복은 흰색 세일러복이다. 해군의 도시인 진해를 상징하는 것이다. 합창단의 이름부터 단복까지, 벚소리합창단은 진해를 대표하는 합창단이라는 자부심이 높다.
“우리 벚소리합창단은 지휘자님도 대한민국 최고, 부지휘자님도 대한민국 최고, 우리 단원들도 대한민국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노래를 합니다.” (우영자 전 진해문화원장)
“정태성 지휘자님은 정말 저희의 자랑이죠. 지금까지 한 번도 인상 쓰는 일 없이 저희를 이끌어주셨어요. 박소현 부지휘자님은 새로운 곡을 연습할 때마다 우리가 쉽게 연습할 수 있게 소프라노, 테너, 알토, 베이스 네 파트를 직접 불러서 녹음한 파일을 우리에게 공유해줍니다. 그분들이 있어서 벚소리합창단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서일옥 부단장)
잊을 수 없는 단 하나의 무대
벚소리합창단은 그동안 많은 무대에 섰다. 매년 500여 명의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기 공연부터 다수의 초청 공연 무대, 꾸준한 봉사 활동, 그리고 전국 단위 합창 경연 대회에도 출전해 <2021년 전국항노화실버합창경연대회>에서는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벚소리합창단의 이름으로 함께 한 모든 공연이 즐겁고 감동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 하나를 꼽으라면 단원들이 한마음으로 꼽는 무대가 있다. 바로 2017년 <제20회 알타 푸스테리아 국제합창제>에서 노래를 불렀을 때다.
이탈리아의 알타 푸스테리아 지역에서 매년 열리는 이 대회는 세계 각국의 아마추어 합창단이 참가하는 국제 합창 대회다. 이탈리아에서 수년간 테너로 활약한 바 있는 정태성 지휘자의 지도로 참여한 첫 국제 대회에서 벚소리합창단은 김효근의 노래 <눈(雪)>과 이탈리아어로 된 성가 <가우데아무(기뻐하라)>를 불러 기립 박수를 받았다.
“우리가 부른 노래로 외국 관객들의 박수를 받았던 기억은정말 잊을 수가 없죠. 한 관객은 공연을 마친 저희에게 다가와 말했어요. 공연이 너무 멋져서 전공자 모임인 줄 알았다고요. (웃음)” (서일옥 부단장)
벚소리합창단은 44개국 100여 개 참가팀 중 상위 3팀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앙코르곡으로 그들이 부른 노래는 애국가였다.
“앙코르 공연을 하는 날엔 폭우가 쏟아졌는데 관객들 모두가 야외 텐트 안에서 우리의 노래를 들어줬어요. 태극기를 보면서 아리랑을 부를 땐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전상중초대단장)
벚소리합창단은 대회 무대뿐 아니라 9박 10일간 이탈리아 곳곳을 다니면서 거리 공연을 가졌다. 한 분수광장에서 아리랑을 부를 때는 한국인 교민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기도 했다. 벚소리합창단이어서 만날 수 있었던 감동과 환희. 단원들은 이날의 기억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한 소절만 들어도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잊을 수 없는 어느 유행가처럼.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벚소리합창단 단원들이 생각하는 합창의 매력은 무엇일까.
“합창은 수십 명의 사람들이 마치 한 사람이 부르는 것처럼 화음을 맞춰 불러야 합니다. 일심동체가 되어 하나의 목소리로 울려퍼질 때의 감동은 이루말할 수가 없지요.” (전상중 초대단장)
그리고 이들은 일심동체로 이야기한다. 벚소리합창단이 있어 즐거운 노년을 살아갈 수 있다고.
“벚소리합창단은 제 삶의 에너지예요. 노래를 부를 때마다 마음이 즐겁고 젊어지는 것 같아요.” (서일옥 부단장)
“함께 부르는 노래는 내 노년의 기쁨이고, 내 삶의 행복이죠.” (우영자 전 진해문화원장)
“인생 2막을 테너로 활동하면서 더없이 행복함을 느낍니다. 이런 말도 있잖아요. 아름다운 젊음은 자연이 만들어낸 우연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그야말로 예술 작품이라고. 벚소리합창단 덕분에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상중 초대단장)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살아가는 노년. 노래가 있는 곳에 행복이 따른다는 말처럼 인터뷰를 하는 내내 웃음을 잃지 않던 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서일옥 부단장은 <태평성대>, 우영자 전 진해문화원장은 <그 집 앞>, 전상중 초대단장은 노사연의 곡 <만남>을 골랐다. 이어서 그는 <만남>의 한 소절을 멋지게 불러주었다.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사랑해. 사랑해 너를. 너를 사랑해.’ 그의 노래가 마치 자신의 노년을 사랑하는 고백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