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힐링필링 - 성주사, 그리고 회귀형 숲길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모든 걸 말려 버릴 듯 강렬하기만 한 햇살이 적당한 온기로 느껴지는 데는.
바람 한 점이 간절했던, 후덥지근하기만 공기가 적당한 서늘함을 품기까지는.
절대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이 가을에 성큼 자리를 내어 주었다.
어디론가 떠나기 좋은 계절이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추억이 담긴 공간은 익숙하면서도 새삼 낯설다.
학창 시절의 기억에 머물러 있던 성주사를 찾았다. 그리고 걷다 보면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는 성주사 입구 회귀형 숲길을 걸을 참이다.
성주사(창원시 성산구 곰절길 191)는 굴러가는 낙엽만 보아도 웃음을 참지 못했던 시절을 소환한다.
지금은 이전 후 폐역이 된 성주사역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야 나오는 절. 절 부근까지 가다 중간 어디쯤 자리를 잡고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청청 패션'을 뽐내며 김밥과 주전부리를 먹었던 곳.
절보다는 그저 마주한 친구와 깔깔대는 것이 세상 전부였던 시절을 지나고 보니 성주사는 고즈넉하면서도 계절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차로 진입하면 주차장이 몇 군데 나오는데 어디서부터 걸을지 생각해 주차장을 고르면 된다.
성주사와 가장 가까운 너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걷기 시작했다.
창원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해 새로울 것이 없을 듯하지만 사실 성주사는 전국적으로도 꽤 유명한 절이다.
성주사는 창원과 김해 사이에 있는 불모산의 서북쪽 골짜기에 자리를 잡았다.
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이 일곱 아들을 입산, 출가시켰다는 전설이 담겨있는 불모산. 그 일곱 아들이 성도하여 불법을 펼쳤으니 '부처님의 어머니 산'이라 하여 불모산(佛母山)이라 하고, 성인이 머무는 절이라 하여 성주사(聖住寺)라고 한다.
유래와 관련해 두 개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나는 가야 김수로왕의 부인 허왕후는 인도에서 사촌 오빠 장유화상과 함께 한반도로 건너왔는데 왕은 귀한 손님인 장유화상이 머물 수 있도록 절을 지었다. 임금이 지시해 지었다 해서 '금절'이라 불렸고, 절에 있는 우물도 임금이 마신 물이라는 뜻으로 '어수각'이란 이름이 붙었다.
다른 하나는 신라시대 배경이다. 당시 해안지대에서는 왜구의 피해가 극심해 왕이 항상 근심했는데 지리산에 있던 무염이 이 산에 와서 신통력으로 신병을 물리쳤으므로 왕이 기뻐하며 밭 360 결과 노비 100호를 내려서 이 절을 창건했다 한다. 이는 1746년 동계 스님이 지은 성주사 사적문에 '성주사는 신라 42대 흥덕왕 때 무염 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한다'라고 적혀 있는 데서 유래한다.
절의 별칭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성주사를 한때는 웅신사(곰절)이라고 불렀는데 이 또한 전해지는 이야기가 둘이다.
임진왜란 때 절이 소실되었는데 1604년 진경 대사께서 절을 다시 중창하려고 불이 난 옛날 절터에 목재를 쌓아두었는데 곰들이 밤사이에 지금의 자리로 목재를 옮겨놓아 이를 부처님의 뜻으로 알고 현재의 자리에 절을 지었다는 설화가 첫 번째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는 옛날 어느 때 불모산에 살던 곰이 있어 배가 고파 내려왔으나 성주사의 스님들이 좌선 삼매에 들어 수행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에 곰은 배고픔을 잊고 스님들의 자세를 흉내 내곤 하다가 그것이 공덕이 되어 후생에 그 곰이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 사람이 자라면서 인연을 따라 성주사에서 부목(절에서 땔나무를 하는 사람) 일을 하게 되었는데 밥솥에 불을 때다가 자기도 모르게 삼매(불교 수행의 한 방법)에 들어 밥이 타는 줄도 몰랐다. 공양간을 지나던 주지 스님이 그 광경을 보고는 지팡이로 머리를 치며 깨우는 순간 '나의 전생이 곰이었는데 스님의 흉내를 내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알고 더욱 정진해 큰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오랜 역사만큼 풍성한 이야기를 품은 성주사는 많은 문화재가 있다.
경남지방문화재인 대웅전을 비롯해 삼층석탑과 감로왕탱, 용화전 미륵보살, 동종 등의 등록 문화재와 이 밖에 등록되지 않은 문화재들이 많다.
주차하고 입구에는 불교와 성주사를 상징하는 코끼리와 곰 동상이 먼저 우리를 반긴다.
성주사는 시내에서 접근성은 좋으면서도 나무도 많고 계곡이 함께 해 깊은 산속에 있는 느낌을 준다.
이리저리 바람에 흔들리는 인경소리를 벗 삼아 느릿느릿 걷는다.
천왕문을 지나 성주사 경내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총 33개의 돌계단을 만나게 되는데 이 계단은 불교의 교리를 담아 쌓아 올렸다 하다. 한 걸음 한 걸음 딛으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본다. 계단 옆에 자리한 연못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는 청량함을 더한다.
성주사 입구에서 템플스테이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보면 회귀형 숲길이 펼쳐진다.
중간중간 양쪽 길에는 차나무가 심어져 있고, 숲 사이로 길이 나 있다. 성주사 입구에서 출발해 숲속 나들이길(1.5km)을 걷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숲길을 지나 황토 숲길을 걸으면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게 된다. 더 걷고 싶다면 갈림길에서 숲길로 방향을 틀지 말고 안민 약수터 쪽으로 향하면 된다.
늦여름의 초록을 품은 이곳도 이제 곧 가을을 맞이할 것이다.
작렬했던 햇살이 따사롭게 느껴지는 것도 지나고 보면 잠시였듯, 지금 이 힘든 시절 또한 끝내 지나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