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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좌동은 역사적으로 웅천현 상서면, 웅천군 상서면, 창원부 웅서면, 마산부 웅서면, 마산부 진해면, 창원군 진해면, 창원군 진해읍 등의 관할로 변천하여 왔다. 1910년에 일본이 침탈하기 이전까지 우리 고장은 “여명리(餘明里),좌천리(左川里), 신좌천리(新左川里)”로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나 일본 해군이 우리 고장을 침탈하여 동양 최대의 진수부(鎭守府)로 건설할 야욕을 가지고 주민들을 밀어 내고 이름도 “북방시가(北方市街)”라고 고치고 도시계획을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군비 축소의 조류는 예정한 최대의 군항시설 계획을 “요항부(要港部)”로 격하하게 했고, 도시계획도 무산되어 주민들이 되돌아와 살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 육군부대인 소위 “진해만 요새 사령부”가 주둔하였고, 제2차대전말기에는 일본 군속의 관사, 이른바 근로 공원 학도들의 기숙사(현 대야초등학교 자리)가 건립되기도 하였다. 광복후 귀환 동포와 6.25피난민의 입주 등으로 오늘날과 같이 인구밀도가 조밀해졌으며 동명은 우리 식으로 개칭하면서 “여명리(餘明里), 좌천리(左川里)”의 머리글자를 따고 이름을 “여좌동(餘左洞)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