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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국가산업단지 지정 50주년 기념행사
4. 23.(화) ~ 4. 27.(토) / CECO 및 창원광장
주최 : 산업통상자원부, 경상남도
주관 : 창원특례시, 한국산업단자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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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1분 다큐

(8월) 봉암수원지

등록일
2021-09-30 10:14:26
조회수 :
300
여기 초점을 받으면 키보드 화살표 상(↑)·하(↓) 키로 대본 스크롤을 할 수 있습니다. (8월) 봉암수원지
조선인은 먹을 수 없었던 물

일제 강점기 마산 최초 상수도를 아십니까?

Q.마산 최초 상수도를 아시나요?
“마산최초 상수도? 모르겠는데요.”
“얼핏 들어본 것 같긴 한데...”
“아니오. 몰라요...”
“우리 지역에 그런 곳이 있어요?” 

창원을 기억하다
역사 1분다큐 RE:
[상남영화제작소]
마산 최초 상수도
봉암수원지


봉암수원지
-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 산 12-1

na> 
팔용산 중턱 고요한 호수
봉암수원지

도심 속 유원지
봉암수원지의 시작
콜레라

na> 
오늘도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곳의 시작은..
콜레라였다.

일제강점기 1920년
동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콜레라
-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 산 12-1

na>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
동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콜레라

1920년 8월경에
마산 시내를 엄습한 콜레라로 인해서
아침에 만난 사람이 저녁이 되면 격리병원이나 묘지로 가고 만다.
- 김형윤의 [마산야화]中에서

na>
당시 인구 2만의 도시 마산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콜레라로 목숨을 잃었다.

전염병에 취약한 공동우물 대신
깨끗한 상수도가 필요했던 일본

na>
콜레라 전염에 취약한 공동 우물대신 
깨끗한 상수도가 필요했던 일본인들. 

“팔용산 입구를 막아 상수도를 만들자!”

na>
팔용산 입구를 막아 
상수도를 만들 계획을 세운다.

1927년 5월 ~ 1930년 3월까지
3년간 조선인의 노동력으로 만들어진
마산 최초 봉암수원지
- 수원지에서 정수장까지의 송수관이 표시된 도면

na>
3년 동안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마산최초 상수도
봉암수원지

하지만
조선인들의 몫이 아니었던
봉암수원지 물

na>
하지만
마산최초 상수도는 
조선인들의 몫이 아니었다. 

허정도 경상남도 총괄 건축가
“봉암수원지를 처음 건축할 때는
1만 6천 명의 급수를 담당하겠다고 지었는데
실제 준공이 되고 난 이후에는
4천 명이 먹었다고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일본인들이 모여 사는 신마산에
일본인 4천 여명이 살았기 때문에
그 일본인들과 일부 부자 조선인들에게
급수가 되어진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 수돗물을 먹는 사람이 4천 명
가구수는 800호다.
- 1941년 [양진마산의 전모]中에서
- 약신마산의 전모
  일제강점기 마산 지역의 지리,역사,공공 및 민간단체, 산업 등
  지역의 전반벅 현황을 담아 편찬한 단행본
  
na>
마산최초의 상수도였지만
대다수의 조선인들은 먹을 수 없었던
봉암수원지 물

90년 전
식민지 조선의 아픔을 안은 채
오늘도 우리 곁에 흐르고 있는
봉암수원지

na>
90년 전,
식민지 조선의 아픔을 안은 채, 
오늘도 우리 곁에 흐르고 있다.

창원 역사 1분다큐 RE: PLUS CHANGWON

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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